중남미 여행 날짜별일기

중남미 가톨릭선교사 방문기

즈카리아 2018. 7. 10. 16:54



2017년 11 7 


 

오늘은 환갑을 맞은 나의 61회 생일날.


 

자식 3남매가 모두 출가하여 외손자(8)와 친손자(1)


 

모두 봤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다.


 

이제부턴 못다한 여행을 하기 위해 다시 출발하는 날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시간은 오후 635,


 

자식, 며느리들이 공항까지 배웅하겠다는 것을 극구 말려


 

우리 둘은 각자 작은 배낭 한 개씩 하고 노트북가방을


 

들고 달라스공항에서  4시간 경유를 하고


 

칠레 산티아고공항에  8일 오전 9:30분에 도착하였다.


 

오토바이를 한달 전에 부산에서 칠레 발파라이소 항구로 미리 보냈고


 

도착하자마자 찾기 위해선 직접 가는 버스가 없고 산티아고 시내 중심지로


 

들어가 종합터미날에서 바꿔 타고 이동해야하며 공항에서 trubus라고


 

써 있는 대형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터미날까지는 1800페소(3,100), 산티아고에서  발파라이소까지


 

두시간에 2700페소(4,700)로 되려다 주었다.


 

오후 1시경 터미날에 도착하여 숙소까지 4km 못되는 거리를 택시 메타기가 


 

9000페소(16,000)를 가르켜 엄청 비싸게 느껴진다


 

다행이 택시기사가 친절하여 산비탈 언덕 위에 있는 번지표시도 없는 집을 찾아


 

숙소 주인과 통화하여 초인종이 없는 철대문을 열어줘 들어갔다


 

숙소는 한마디로 개우리였고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가 주방, 거실 할 것 없이 왔다 갔다 돌아 다니고


 

오줌 지린내는 진동을 하고 주인아줌마는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는지


 

얼굴이 빨갛고 아저씨가 대신 빈방을 보여주는데 열려있는 빈방 하나는


 

고양이 너 댓 마리가 방 하나를 차지하여 찢어진 벽지며 바닦은 아예 모래를


 

깔아 똥냄새가 진동하였고 옆에 다른 방은 손님이 방금 나갔는지


 

아직 청소가 하나도 안된 상태에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 내며 


 

   우리가 자고 갈 방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청소가 시작되며 끝날 때 까지는 두 시간여 동안 여행가방를


 

방안에 들여놓지도 못하게 하였다.


 

아차 싶다.


 

주인아저씨한테 통관 절차를 도움 받아야 하므로 어쩔 수없이 머물러야겠지만 


 

제발 빨리 끝나 이 집에서 하루속히 떠나게 해줬으면 좋겠다


 

가방은 안마당에 들여 놓고 걸어서 주변을 둘러 보는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풍경과 명물인 알록달록 그려진 담벼락과 지붕 풍경이


 

TV에서 본 것과 똑같이 아주 예쁘고 아름답다


 

숙소도 저 정도로 예쁘면 좋을 텐데 주방에서 본 그릇이며 지저분함은


 

비위가 상해 물컵 한 개 쓰고 싶지가 않다


 

 50미터 급경사를 오르내리기 위해 두 대의 케이블카가 서로 왔다 갔다


 

운행되지만 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박물관 앞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후덜덜좌석에 앉았다가 곧바로 밖으로 나왔더니 마누라한테


 

쓴소리 한마디 들었다


 

좀더 비탈길을 내려와 작은 식당 앞에 내놓은 메뉴판을 보고 들어가 시킨



요리는 해물 한 접시로 냉동 홍합을 해동해 요리했는지 싱싱해 보이질 않았고


 

작은 홍합과 조개 몇개상추등 야채에 레몬즙을 듬뿍 넣어 시큼한  한접시가


 

11,000페소로 이만원씩 하다니 비싼 물가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옆에 앉아 먹던 중년 두 사람은 스테이크에 후식까지 먹고 나가며 계산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보니 둘이 7,000페소(100페소=180)를 지불하길래 얼른 일어나


 

저 사람들 먹은 메뉴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 달라고 해 가지고 나왔다


 

돌아 오면서 슈퍼에 들려 빵과 음료로 부족한 배를 더 보충했다


 

시차는 다행이 모두 밤 비행을 해서 밤에 자고 아침에 도착한 탓인지 그다지


 

피곤은 못 느꼈지만 일찍 잠자리로 들며 여기까지 먼 길을 무사히 데려다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9일 목요일.


 

오토바이를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 주인과  함께 서류를 들고 


 

은행으로 이동하여 포워딩 본사에 송금하고 세관에 들려 통관서류 작성하여 제출하고 


 

다시 현지 포워딩출장소에 송금영수증을 제출하면서 1차 서류는 마무리되었고 


 

보관창고까지 20km를 승용차를 대절하여 이동하여 부산에서 보낸


 

나의 오토바이가 무사한지 확인하였고 서류를 제출하고 보관료를 내는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무려 6일 보관료가 91만페소로 우리돈으로 160만원이나 엄청난 금액을 요구해


 

숙소주인이 51만페소(90만원정도) 40만페소를 깎았다고 두 개의 영수증을


 

보여주는데 그마저도 엄청난 금액이라 이것 짜고 고스톱 치는 것 아닌지


 

의심이 갔지만 항변 한마디 못하고 하소연할 길 없는 벙어리의 냉가슴으로


 

거금을 지불하고 찾아 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턴 짐보따리가 너무 많아 큰일이었다


 

출발 전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산티아고에 계신 신부님 두분한테서 카톡으로


 

소식이 왔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며 한인성당 사제관으로 오라는 말씀과


 

저녁부터는 성골롬반 이재민 아피아신부님 사제관에서 머물수 있게


 

준비했으니 그쪽으로 가라는 말씀에 어찌나 기쁘던지


 

우선짐보따리를 줄이기 위해 옷가지를 담은 자루 한개와 선물로 가져 간


 

커다란 김박스고추장 3kg을 아피아신부님은 인근에 사는 페루신자한테


 

연락하여 나중에 찾아 가기로 하고 보관시켰고 무게를 조금은 줄였지만


 

아직도 남은 무게는 엄청나게 많다


 

신부님을 찾아 뵙고 좀 더 꺼내놓고 다녀야 할 것 같다.  

 

 

 

 

 


 

11 10일 금요일,


 

한인성당 주임신부님이 점심약속을 오후130분까지 사제관으로 오라며


 

주소를 알려주셔서 일찍 서둘러 정오에 도착하니 철문이 닫혀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다 성당을 발견 현지인 신학생을 만나 대문을 열어줘 들어가니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단다


 

반갑게 맞아 주셔서 정말 고마웠고 칠레 식복사자매님은는 맛나게 음식을


 

차려 내오셨다


 

신부님의 점심식사는 130분부터 하며 대부분 이곳 현지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한다


 

외국인 신부님과 문 열어 준 칠레 신학생도 함께 식사를 마치고 정원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다음에 또 찾아 뵐 것을 약속하고 약 한 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성골롬반 아피아신부님의 사제관을 찾아 나섰다


 

혼자서 선교활동 하시는 신부님은 젊고 성격이 얼마나 활달하신지


 

처음 만난 분 같지 않아 좋았고 우리가 머물 빈방이 주방옆에 한개 있었고


 

위층에도 신부님이 주무시는 화장실이 딸린 단칸방이 있었다


 

집 구조가 워낙 작아 아래층에는 우리가 잠자는 방과 작은 부엌이 있고


 

휴식공간인 거실에 있는 식탁과 의자가 전부였다.


 

우리가 잘 방은 신학생이 주말만 와서 자고 간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신부님 승용차를 타고 따라 다니는데 공소에 들려 성모성월을 맞아


 

로사리오 기도모임에 참석한 후 병자가정 방문을 해 쾌유를 빌어 주셨고


 

또 다른 집을 방문하여 집축성을 하신 후 사제관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신부님은 어제든지 신자들 사진을 많이 찍어 달라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열심히 신자들 모습을 담았다


 

공소에 가도 제대로 된 사진이 아닌 일반 A4용지에 칼라 프린트한 사진이


 

붙혀 있었고 가정에도 집안에 사진이 제대로 걸려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카메라를 렌즈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해 주는 것이 신자들과


 

가까이 하기도 좋고 친교가 되어 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11 11일 토요일


 

칠레는 11 8일부터 성모성월이 시작되어 우리와는 계절이 정반대인


 

여름이 시작되며 로사리오 기도 모임으로 여러 공소 신자가 본당에 모여


 

새벽미사를 함께하는 독특한 행사로 일년에 네 차례를 해야 되지만


 

두 차례로 줄였고 새벽이 아닌 해가 중천인 아침730분에 미사를


 

시작해도 별반 신자가 모이질 않았다


 

성골롬반소속 외국인신부님 네 분과 수녀님도 몇 분도 참석하셨다는데


 

정작 수녀님은 평상복을 하고 계셔서 몰라 뵈었고


 

신자들은 각 공소마다 모여 함께 느긋하게 오는데 맨 앞에는 십자가를 들고


 

다음은 커다란 성모님을 들며 나머지 신자들은 뒤를 따라 찬송가를 부르며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미사는 끝나고,


 

2018 1월에 칠레를 방문하시는 교황님을 위해 공헌기도도 함께 바치며 

 

 

각 공소에서 준비해온 빵과 음료를 차려 놓고 신자들이 친목을 나누는 장이


 

되는 것도 참 보기 좋았다


 

서로 만나면 꼭 끌어 안고 볼을 맞대며 등을 두드려 주며 쪽,쪽 입으로 소리를


 

내며 볼에 키스하는 것이 참으로 정겹게 보였다


 

우리, 아피아신부님은 장난을 더해 어린이들에게는 주먹을 마주치며


 

일일이 어린이어른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찾아 다니며


 

끌어안고 인사를 모두 하신다


 

마지막 한사람까지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야 사제관으로 돌아왔고

  

 

저녁에는 다시 로사리오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관할 신자 할머니가 돌아 가셔서 장례미사를 하셨고


 

다시 가정집 축성을 다녀 오셨다


 

그래도 어제는 마지막 가정에서 집축성을하고 다과를 준비해놔


 

저녁끼니를 때웠는데 오늘 방문한 집은 그마저도 내놓을 형편이 않되었는지


 

수돗물을 떠와 쫄쫄 굶고 밤늦게 들어와 피곤하여 그대로 잠들었다

 

 

 

 



11 12일 일요일


 

일요일 아침은 아피아신부님은 공소에 미사를 드리러 가셨고


 

우리는 한인성당으로 가 교중미사에  참석하였는데  처음 만난 진영범군과


 

함께 온 인천에 산다는 대학생 마리아자매와 미사도 함께 드렸다


 

칠레성당을 빌려 교중미사만 드리기 때문에 미사가 끝나면 밖으로 나와


 

회관이라 부르는 한인성당 부속건물로 모두 이동하였으며


 

그곳에는 성당 사무실과 사제관소성당레지오방과 식당이 있었고


 

주일 미사가 끝나면 회관으로 모두 이동하여 돌아가며 자매님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점심을 같이 나누는 일을 한번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메뉴는 소불고기에 깍두기어묵볶음에 된장국과 흰쌀밥은 잔칫상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사무실앞 쇼파에 앉아 닭띠 동년배 루도비코형제님를 비롯해


 

형제님들 여러분에게 둘러 쌓여 그간 여행담을 늘어놓았고


 

떠나기 전에


 

식사 한번하자는 말씀들을 하시며 헤여 졌다.

 

 

주임신부님이신 사무엘신부님은 우리를 위해 손수 운전을 하시고


 

성모님이 산티아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다란 산중턱에 주차하고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 오는 길에 살구와 납짝밀이 들어간


 

처음 맛보는 달콤한 음료를 사 주셨다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대성당에서 4시부터 성골롬반 연합미사에 데려다 주셨고


 

그곳에 참석하시는 아피아신부님을 만나게 해 주셨다


 

각 본당에서 들고 온 대형십자가를 흔들며 춤을 추며 입장하는 모습도 이채롭다.


 

미사를 마친 아피아신부님은 곧바로 공소로 또 다시 이동하여 저녁미사를 하셨고


 

어린이들을 제대 앞으로 불러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빙 둘러 서게 한 다음,


 

성찬전례를 하시는 모습이 정말 어린이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11 13일 월요일,


 

월요일 오전은 신부님도 쉬기 때문에 별다른 활동 없이 집안에 있기로 하였다


 

오후에는 내년도 아미칼 모임이 칠레에서 있기 때문에 사전 준비로 임원진만  


 

산티아고 한인성당에 모이셨는데 우리는 사전에 인사드릴 계기가 되었고 


 

신부님 과 수녀님들께서는 서슴없이 계신 곳으로 찾아 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고맙고 기뻣다


 

리마에서 500km를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다시 안데스산쪽으로 300km를 더


 

올라가야 되는 고산지대에 선교하신다는 아미칼 회장신부님도 가능하면 찾아


 

오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볼리비아에서 오신 아미칼 수녀님 두 분은 친자매로 동생수녀님이 먼저


 

입교하시고 뒤따라 언니도 수녀가 되셨단다


 

정말 가문의 영광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런 집안이다


 

멕시코는 고산지대가 많아 고산병에 많이 힘들다고 하신다



 

 

 

 

11 14일 화요일 ~ 18일 금요일


 

화요일은 아피아신부님이 아미칼 임원들과 발파라이소로 답사를 가셔서 


 

우리는 단지 며칠밖에 안됐지만 사제관에서 오랜간만인듯 휴식을 취했다.

 

 

점심 무렵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한인상가가 밀집해 있는


 

한인회관 근처로 가서 배추와 무새우액젓을 사다가 배추김치를 담았는데


 

한국산이 아닌 남미산 암염이라 간을 못 맞춰 많이 짜게 담근 것 같아 걱정이다


 

담그는 김에 식초 사다 풋고추 간장 절임도 해드렸고 


 

타향에서 고생하시는 신부님이 안쓰러워 뭐라도 더 잡숩게 해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재료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신부님은 오히려 우리를 챙기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경을 많이 쓰신다


 

성격도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하신지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하나에서 열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밤에 갑자기 가까운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렸는데


 

신부님께서는 총성이라고 하신다


 

우르는 처음 사제관에 왔을때 밤에는 절대로 밖에 나가 돌아 다니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셔서 신부님은 겁이 많으신 분이구나 했는데


 

막상 연발로 탕,탕하는 총소리를 듣고 나서는 우리도 겁이 났고 


 

평소에도 항상 대문과 창문등을 철저히 잠갔고


 

운전하면서도 유리창문을 꼭 올리고 잠가 왜 그러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빨간불 신호등에 멈췄을 때 창문이 열린 틈으로 권총을 들이 밀고


 

물건을 강탈해 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도,


 

신부님은 매일 공소 미사와 기도모임 등에 우리부부를 함께 참석을 시켜


 

말은 비록 못 알아 듣지만 따라 다니는 것만으로도 가는 곳마다 반갑게 맞아 주는


 

현지 신자들이 너무 고마워 빈손으로 방문한 것이 너무 미안할 따름이었고


 

단지 카메라뿐이라 열심히 사진을 잘 찍어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방문하는 공소가 아직은 간 곳을 또 간 것 같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신자들마저 비슷해 좀 전에 끌어안고 인사한 분이 다시 만나 또 반갑다고


 

끌어 안아 주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였다


 

떠나는 날까지 몇 곳을 방문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그래도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사진을 일일이 찍어 주고 보니 모두 달라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떠나는 날을 토요일로 정해 놓고선 신자들이 그리워지고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나도 모르게 좀더 있고 싶어지는 감정이 들어 안타까웠다.

 

 

신부님은 주말에만 신학생이 오니 시내에서 주말을 지내고 다시 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가 더 있으면 신부님이 많이 불편할텐데 그럴 수는 없었다.


 

금요일 오전은 한인회관에 가 준비모임을 마치고 떠나는 아미칼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추후 꼭 찾아 뵙겠다고 약속하였다


 

점심 무렵에 아르헨티나로 가시는 수녀님이 한 분이 계셨고 밤 비행기로 멕시코와


 

페루로 떠나는데 아직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아 아피아신부님의 안내로 한인성당을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고 한인마트에 들려 한국에만 있는 생필품들을 사셨고


 

나는 한인카페에 들려 큰 컵에 담아주는 팥빙수와 커피를 대접해 드렸다


 

무려 거금인 3만페소(52,000)를 지불했지만 나중에 방문할 것을 생각하면


 

조금도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와 아피아신부님은 공소미사에 가셨고

 

 

우리는 내일 떠날 채비를 하느라 사제관에 머물렀다.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 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 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11 18일 토요일


 

오늘은 일년에 두차례 하는 성모성월 토요일 새벽미사를 아침 730분에


 

각 공소에서 십자가와 성모님을 품에 안고 본당에 모여 합동미사를 하는 날이다.


 

우리부부는 뜻밖에 신부님의 배려로 주수봉헌을 하게 되어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이 날뻔하였다.


 

두번째로 끝나는 날이라 아피아신부님은 이번 미사만큼은 지난주에 못마땅해


 

하셨던 미흡한 부분들을 손수 직접 신자들과 논의도 하시고 분담을 줘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게 공을 드린 미사로 30분도 더 일찍 나가셔서


 

직접 지도하셨다


 

우리도 덩달아 일찍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따라 나서 각 공소에서 십자가를


 

앞세우고 성당에 들어오는 장면과 포옹 인사까지 놓치지 않고 모두 담았다.

 

 

미사는 준비대로 성황리에 잘 치르셨다


 

각자 공소에서 준비해 온 빵과 음료로 함께 식사를 나누었고


 

사제관으로 돌아와 서둘러 신부님께 그 동안 찍은 모든 사진들을 메모리에


 

옮겨 드리고 사제관을 떠나 왔다


 

출발하는 날 만큼은 아침 일찍 서둘러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서 숙소를 정해야


 

안심이 되는데 오늘은 10시반에서야 출발했으니 고속도로를 아무리 빨리 달려도


 

푸콘까지 670km를 한번에 가기에는 무리일 듯 쉽다


 

아피아신부님은 절대 무리하지 말고 다니라 하셨는데


 

첫날부터 목적지까지 가겠다는 욕심을 내고 달려보니 왠걸 혼자도 아닌


 

뒤에 아내를 태우고 무거운 짐을 함께 싣고 달리기엔 너무 속도가 않났다


 

아무래도 해는 저물어 이쯤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편하게 가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캠핑장 표시를 지나쳤다


 

다음 출구에서 톨게이트를 벗어나 지나쳐 온 캠핑장을 찾아가 하룻밤 잠자리를


 

정하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헬멧을 벗으니 귀에는 굉음이 들리고 행락객이 눈에 많이 띄어 무슨 일이지 싶어


 

둘러보니 출발 전에 신부님이 중간에 멋있는 유명한 폭포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귀담아 듣질 않았었고 속으로 한번에 푸콘까지 가야지 했었는데


 

글쎄,


 

신부님이 설명해 주신 그 폭포가 바로 눈앞 지척에 있지 않은가


 

참말로 신기하게도 신부님은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해 주셨나?

 

 

 


 

11 24 아침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어제 놓아둔 물건이 모두 다 그대로 있는데 유독


 

압력밥솥과 바게트빵과 식빵이 안보인다빵은 개가 물어 갔다고 하더래도 


 

압력밥솥은 절대로 개가 물어가진 못했을 텐데 없어졌다면 사람의 짓이지 싶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은 그대로 남아있고 음식만 없어진 걸로 봐선


 

짐승짓이 틀림없는데 


 

국물이 들어있는 무거운 압력밥솥이 없어진 것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제 아침은 버너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없어져 주변에서 되찾은 일이 


 

퍼뜩 떠올라 또 다시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여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압력밥솥과 뚜껑이 열려 있고 고무바킹도 주변에 함께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안에 들어 있던 닭다리와 국물은 오간데 없고 깨끗하게도 비워 있었다


 

그나마 소중한 우리의 압력밥솥을 찾은 것만도 너무 감사해


 

잃어버린 아흔아홉 양떼보다 한 개의 압력밥솥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압력밥솥을 아피아신부님은 우리보고 무겁게 밥솥까지 들고 다닌다고 하셔서


 

그럼 신부님 가지라고 드렸었는데 그만멕시코에서 오셨던


 

아미칼 수녀님이 압력밥솥은 멕시코에선 절대 필요한 물건이라고 


 

다시 돌려받으라고 해서 되돌려 받은 물건인데 역시 밥맛은 압력솥 밥이 최고다.


 

아침식사는 아피아신부님이 주신 귀한 꿀로 차 한잔씩 타 마시고


 

칠로에섬 허리부근이며 지도상에는 태평양 바다가 한눈에 보일 것 같은


 

위치에 있는 내셔날파크 캠핑장을 찾아 이동


 

완전 오지라서 가기 전에 카스트로 시내에 들려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해


 

시골길을 38km를 찾아 들어갔는데 정작캠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되돌아 나와 몇 군데를 찾았는데 대부분이 시즌이 아니라서 준비가 안돼있고 

 

 

시설이 안 좋은데다 가격도 비싸게 불러 다른 곳을 찾아 되돌아 나왔다


 

오토바이 박스 위에 실은 가방 세개가 크고 무거운데다 그 위에 두 사람이


 

올라앉으면 노면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운전하기가 너무나 위태롭다


 

가다 서다 하는 게 가장 힘들고 뒤에서 내렸다가 다시 올라 탈 때마다


 

초긴장을 해야 한다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약간만 기울어져도 되돌릴 다리 힘이 부족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모든 짐을 내리고 빈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운 다음


 

다시 짐을 실어야기 때문에 보통 일이 아니다


 

빨리 숙소를 정해야  한시름 놓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다행이 넓직하고 우리뿐인 괜찮은 캠핑장을 발견하여 주인집 아들과 손짓 발짓과 


 

간단한 영어로 시설이 어떤지 먼저 파악하고 다음으로 더운물 샤워와 전기를


 

쓸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본 다음 가격 흥정에 들어가 의외로 가장 저렴한 하루에


 

일인당 4000페소를 달라고 하여 올컨히 더 깎을 수도 있겠다 싶어 10일동안


 

머물 테니 하루에 둘이 5,000페소를 말하고 눈치를 보니 난색이라


 

오케이하루에 6,000페소로 낙찰하고 서로 악수로 답했다


 

그 동안 쌓인 피로도 풀 겸 두명이 하룻밤에 10,000원이면 


 

10일간 푹 쉬었다 가야겠다

 


아차


 

주변 경치와 시설만 확인했지 와이파이가 안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워낙 외진 곳이라 인터넷은 안되므로 10일동안 세상과 불통으로 지내야 된다니


 

끔찍한 일이다


 

주인 가족이 모두 친절히 반갑게 맞아 주는 것으로 지낼 만 할 것이다.

 

 



 

12 3일 일요일,


 

캠핑장 주인이 새벽에 차를 가지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침에 들어 올 때는 


 

그물에 걸린 꽃게를 수십마리 가지고 들어 오며 우리 보고 가져다 요리해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자기네는 잡은 연어만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꽃게를 손질하기 귀찮아서 요리를 안해 먹는지


 

나는 그물에서 모두 빼내 잔디밭에 놓아뒀으나 그대로 방치를 해


 

큰놈으로 6마리만 슬쩍 가져다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지펴 삶아 먹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저렇게 안 먹고 버릴 것이면 전부 가져다 삶아 먹을걸

 

우리는 아침밥을 먹은 후라 배도 부르고 아이고 아까워라.

 

 

오후 1,


 

캠핑장을 출발하여 3시가 안돼 선착장에 도착하였으나 페리는 630분에


 

출항이라 3시간을 대기를 했고 차이텐까지 4시간 걸린다던 배는 1130분에


 

도착하여 예약도 없이 깜깜한 밤에 숙박할 곳을 찾기가 난감하였다


 

어렵게 캠핑장을 찾았고 주인은 잔디밭에 위치를 정해 줬다

]

 

조그마한 잔디마당에 여러 명이 이미 텐트를 친 상태였고


 

우리도 어둠속에서 가까이에 설치를 마쳤는데 잠시 후 같은 배에 탓던


 

도보배낭 여행자들은 이제 도착하여 우리 옆에 텐트를 치기 시작하였다.


 

 

 

 

12 4일 월요일 



첫번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차이텐 캠핑장에서 주인이 나눠준 지도에도 나와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경치가 매우 좋다는 Amarillo Parpue Pumallin Sur 


 

내셔날파크 무료캠핑장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자갈길에 들어서서 산속으로 5km를 더 들어 가는 길은


 

온통 자그만한 동그란 자연석 자갈이 깔려있는데다 내리막 오르막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올라가는 중간에 그만


 

마치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누가 갑자기 뒷목을 잡아 당기듯


 

오토바이 앞바퀴가 번쩍 들리며 옆으로 내팽개치고 만다


 

순간


 

둘이 깔린 상태에 내 왼발 발등이 아내 발판에 눌린 상태라서 아파는 죽겠고


 

아내는 다행이 다치지는 안했다는데 발이 빠지질 않으니 둘이 함께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아차,


 

이 깊은 산속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다가 어느 세월에 구조가 될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은 채 1분도 안돼 반대편에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며


 

앞서 오는 잔디깍는 4륜차와 뒤따라 승합차가 내려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섯 장정이 달려와 일으켜 세워주고


 

짐을 풀어 언덕위로 모두 날라주며 살펴 주었다


 

젊은이들은 우리가 가는 캠핑장의 잔디를 깎고 점심식사 하러 내려


 

가는 중이었다


 

아픈 발목의 통증을 참고 겨우 도착하여 텐트를 쳤는데


 

무료캠핑장은 어머 어마하게 넓고 깨끗한 잔디는 마치 골프장처럼 평온하고


 

좋아 우리만의 안마당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깊은 산속 넓은공원 잔디밭에 달랑 우리뿐이니 약간은 무서운 생각도 들었는데


 

잠시 후에 다행히 자전거 여행자 두명이 더 들어왔고


 

그중에 한명은 브라질에서 영어선생을 한다는 젊은총각이고  함께 온

 

 

63살인 이태리 아저씨가 어찌나 살갑던지 자전거에 싣고 온 비상 식량인


 

과일이며 커피까지 우리한테 내어 놓는 멋진 사람들을 이곳에서도 만났다.


 

우리는 한식으로 저녁을 된장에 양파와 감자를 넣어 쇠고기 다시다로 맛을 낸


 

찌게와 압력솥으로 한 쌀밥을 제공하니 너무 고마워하고 맛있다고들 한다.


 

다음날


 

파스를 붙힌 아픈 다리도 쉴 겸 우리는 하루를 더 여기서 머물렀고


 

자전거 일행은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였다


 

나는하룻밤을 자고나니 아팠던 다리도 많이 호전되어 산 넘어 왕복 8키로를 걸어


 

전망대에 올라 빙하를 보고 왔다


 

역시 오늘밤은 이 넒은 초원이 우리만의 것이었다.





 

 

 

12 6일 수요일


 

Puyuhuapi에 있는 내셔날파크로 가기 위해 나섰다.


 

가는 길은 역시나 염려했던 대로 비포장길이 많았고 포장공사를 하기 위해


 

작고 동그란 자연석 자갈을 두껍게 바퀴가 파묻히도록 쏟아 부어 


 

자동차가 지나면서 다져지도록 하니 오토바이 바퀴는 푹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며 달리다가 결국 옆으로 넘어졌는데


 

4륜구동 승용차가 뒤따라 오다가 놀래어


 

모두 황급히 달려와 일으켜 주었고


 

운전자는 공사 감독관이었고 우리가 넘어진 것이 미안했는지


 

공사구간이 끝나는 곳까지 아내를 차에 태워다 주기로 하고 먼저 출발하였다


 

그러나 혼자서 타다 넘어지면 절대로 내힘으론 못 일으키기 때문에


 

속으로 엄청 후회를 하면서 불과 몇 킬로가 수십 킬로가 되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안간힘을 써서 겨우 도착하여 아내를 다시 태우고 


 

또 조금 가니 공사구간이 또 나와 괜히 이곳을 찾아 왔다고 후회를 하며


 

겨우 캠핑장에 도착하였으나 그만 다리 힘이 풀려 바로 세우질 못하고


 

또다시, 아내를 태운 체 함께 나뒹굴고 말았다


 

텅 빈 캠핑장에는 우리뿐인 줄만 알았는데  비명소리를 듣고


 

어디에서 쏜살같이 나타난 젊은 남녀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참말로 기가 막힌다.


 

누군가가 분명히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것이 틀림없지 싶다.

 

 

짦게 자른 머리의 프랑스 젊은 아가씨와 애꾸눈에 신기하게 한쪽만 흰


 

속눈섭을 한 이상한 칠레 젊은 청년은 우리 옆에 텐트를 한 개만


 

설치하는 것이 분명 다정한 연인이 틀림없다


 

아내는 눈설미가 좋아 우리가 중간에 오다 들린 주유소 앞 도로에서 


 

이 두 젊은이를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엄지척하는 것을 봤었고 


 

아내도 손을 흔들어 준 적이 있다고 나중에 말해줘서 알았다.

 

 

다음날 아침 젊은이들은 간단한 배낭으로 야채 설러드로 배를 채우고


 

텐트를 철수하길래


 

이 젊은이들은 무게를 줄이려고 끓이는 도구를 안가지고


 

다니는구나 싶어 커피를 끓여 대접하니 너무 고마워 한다.

 

 

사실


 

넘어졌을 때 달려와 우리를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는데 


 

별것도 아닌 커피 한잔 가지고 뭘 그렇게 고마워 하기는??


 

이곳은 만년설 빙하가 녹아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물안개폭포가


 

여러 개로 너무나 장관이며 신비스럽고 고생 고생하며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참으로 많다.



 

 

 

 

 

12 8일 금요일


 

코이아이케까지 가는 길은 오늘도 중간에 비포장길로 들어서부터 높은 산으로


 

꼬부랑 고개길에 구비 구비 급커브를 돌고 돌아 넘어 내려오니 200km중에


 

절반이 비포장길이었다


 

초행길은 포장인지 비포장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주유소에서 구입한


 

도로지도도 색깔로 표시는 해 놨지만 별로 신통치가 않다


 

내내 오는 길은 환상적인 아름다운 울창한 나무숲과 어마 어마하게 큰 아름들이


 

고목들이 쓸어진 체로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방치하여 썩어서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장관이 과연 여기가 파타고니아가 맞구나 싶다.


 

일찌감치 시내에 도착하여 점 찍어 둔 숙소 마당에 텐트를 설치하고 


 

십여일 만에 인터넷을 접속하는데  제일 먼저 손자들 사진을 보내 달라고


 

카톡으로 재촉하였다


 

참으로 제일 보고 싶은 그리움은 손자들이었다.



 

 

 

 

12 10일 일요일 ~ 11일 월요일,


 

칠레치코 마을에 도착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코이아이케 중심지에서 캠핑하며 하루 종일 느려 터진 


 

인터넷과 씨름하느라  맥이 다 빠진다


 

아직도 이세상에는 2G의 속도로 인터넷을 하며 세월을 낚고 있으니 


 

다음 행선지를 찾기 위해 맵스미로 아르헨티나 지도 한장을 다운받는데 


 

반나절씩 걸리니 어딜 나갈 수가 있나


 

코이아이케에서 11시 미사를 드리는데  첫영성체를 하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넊을 잃고 바라 보았다


 

다음날


 

칠레치코로 가기 위해 일찍 출발하여 점심 무렵에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예약을 못한 상태인데 하루에 한번 저녁6시반에 출발하는 페리는 이미 예약이


 

만석이라 표를 구할 수가 없었고 무작정 기다려 보면 모두 싣고 선박귀퉁이에


 

틈이 생기면 오토바이를 실을 수 있으니 탑승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에 할 수없이 6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자동차와 승객이 모두 이미 탑승은 끝났고 출발하기 10분밖에 안남았는데


 

그제서야 가능하다는 손짓을 받고 나는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가 표를 사고


 

오토바이를 배에 실을 수가 있었다.


 

아내는 말은 없었지만 만석이라 못 타면 어쩌나, 초조히 기다린 몇 분 간이


 

상당히 힘이 들었나 보다.


 

아슬아슬하게 선착장에서 하룻밤을 샐 뻔하였으나 면하였다.

 

 

예약이 필수였는데 초행자인 내가 알 수가 있었나


 

지금까지는 예약을 한번도 안하고 잘 다녔는데..


 

2시간30분 걸려 저녁9시쯤 도착하여 가까운 곳에 캠핑장을 찾아


 

텐트를 쳤고 잠 잘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12 12일 월요일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어 엘 칼라파테를 향해.


 

칠레치코에서 아르헨티나로 넘는 국경 검문소는 양국 모두 매우 친절하게


 

신속히 처리를 해줘 기분 좋게 다음 마을인 모레노에 도착하였다.


 

여행자 안내소에서  설명을 듣고 엘 칼라파테까지 가는 624km구간중에


 

70km가 비포장이라 중간인 358km지점 동네에서 자고 


 

다음날 가기로 하였다


 

다행이 캠핑장에 가방 3개를 맡길수 있었고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캠핑용 전기케이블을 캠핑장 주인한테 주면서 가방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혼쾌히 응락하여 텐트와 침낭만 챙겨 가방 한 개에


 

소지품을 담고 가볍게 다녀 오기로 하였다



 

 

 

 

 

12 13 


 

엘 칼라파테 가는 70km구간 자갈길에서 넘어지다.


 

남은 구간인 331km중에 70km가 비포장길이라 무게를 줄였지만


 

막상 자갈길에 들어서니 차이텐에서 심하게 넘어진 기억에 겁이 났다


 

두껍게 깔린 자갈길을 강한 바람에 옆으로 밀려 또 한차례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쓸어져 다행히 아내는 안 다치고 일어났으나 


 

내 오른쪽 발이 눌려 빼낼 수가 없었다


 

아내가 들어 올려 간신히 발을 빼내 만져보니 약간 저리기는 하지만


 

심하게 아프진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겨우 겨우 조심히 달려 비포장길을 벗어나긴 했지만 


 

파타고니아의 강한 바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인으로 자전거로 남미여행중이며 캠핑장에서 만난 부부


 

간단한 수리를 몇 군데 고쳐줬더니 너무 고마워하며 


 

이 다음에 프랑스에 여행 오면 꼭 자기 집에  찾아 오라는 당부와 주소를 주었다.


 

rom1dwker@gmail.com 
Romain Cherouvrier and Yvane Pellé
4 rue des glenan
29120 combrit
for whatsapp: +33626093836
website for cyclers: warmshowers
 

 

아르헨티나에서 성탄절을 맞으려고 어마, 무시한 강한 바람을 뚫고 달려


 

대략 2,400km 5일만에  24일 토요일에 도착하였다.


 

닷새전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계신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방문의사를 전할 겸


 

한인민박집에서 지내며 신부님 수녀님을 찾아 뵐 생각으로 이메일을 드렸는데


 

제일 먼저 답장을 주신 분은 문한림주교님이셨다.  


 

문주교님은 고등학교1학년때 부모님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 와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부가 되었으며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추기경으로


 

계셨던 같은 성당에서 만나 친분이 두터운 관계로 되셨다고 한다.  

 

 

문주교님은 다른 곳에 갈 것 없이 주교님 사제관에 신학생들이 사용하던


 

방이 비어 있다고 곧바로 오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불쑥 찾아 뵈어 너무 염치가 없었지만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으며 


 

혼자 계신 주교님은 로마로 곧 출장을 가시기 때문에 닷새밖에 지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더 이상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편히 지내고 성탄전야 미사를 위해


 

한인성당에 가는 것은 자제하라는 말씀에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가 했는데 


 

조금 있으니 어디에선가 탕! 총소리가 들리며


 

너무 치안이 나빠 어두운 밤에는 절대 밖에 안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저희 부부는 참으로 복도 많아 처음 뵙는 주교님은 물론이고 이 지역에서


 

봉사하시는 꽃동네 두분의 수녀님과 에바페론병원에서 원목 하시는


 

성가소비녀회 세 분의 수녀님이 돌아가며 식사에 초대해 주셨고 


 

주교님사제관으로 돌아 갈 때는 배추김치와 오이지에 과일이며 고기,


 

심지어 이곳에서도 귀한 굴비까지 챙겨주시며 수녀님들의 비상식량을


 

모두 내어 주시는 정성에 너무 고마웠고 여행 중에 쌓인 모든 피로를


 

깨끗이 씻고 편히 지내다가 가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주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종 열쇠를 모두 내어 주시며 다른 곳에서 머물 것 없이


 

주교님이 출장을 떠난 후에라도 이곳에서 지내다 가라는 말씀도 하셨다


 

주교관에는 문주교님 사진이 없다?


 

주교님은 카메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지만 정작,


 

당신의 사진은 갖고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사진 촬영을 부탁하셨다


 

이 참에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을 겸 잘 찍어 드리려고 노력을 했는데 해는


 

저물고 후레쉬는 약하고 내일 아침에 로마로 떠나시는데 참으로 남감하다.

    

 

제의를 갖춰 입고 주교관을 쓰시고 지팡이까지 준비를 하고 나오셨는데


 

야외 촬영은 힘들고 실내 촬영을 하니 조그마한 빛이 약해 은박지로 보조광을


 

해도 참으로 어렵다.


 

어렵게 어렵게 몇 장을 건져 보여드리기는 했지만 참으로 죄송하기 짝이 없다.


 

사진을 내 개인 블로그에 몇 장 올려 자랑하고 싶은데 누가 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다.

 

 

 

 

 

 

 

 

멕시코에 가면 꼭 찾아 뵙고 쉬어 가라는 말씀과 당신은 잘 지내고 


 

성가소비녀회의 모이세수녀님이 일하시는 에바페론병원을 방문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머무는 동안 워낙 날씨가 더워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대낮기온이 섭씨 33도에서 39도까지 치솟아 떼약볕에 돌아 다닌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주교관 1층은 홀이 넓고 시원해 온 종일 지내기가 수월하다.


 

다만,


 

모기와 벌레만 없으면 좋겠는데 종아리며 팔에 온통 긁어서 부풀어 오르고


 

버물리를 발라도 별 소용이 없다.  


 

12 31일 일요일은 꽃동네수녀님이 계신 성당으로 가 미사를 함께 드리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특별히 우리 주시려고 미리 요리해 놓은 닭볶음탕에


 

여러 가지 반찬을 마련하여 점심상을 차려주셨는데 두 차례씩이나 얻어


 

먹기만 하고 나오기가 너무나 죄송하기 짝이 없다.


 

이베드로수녀님과 최필립보수녀님, 정말 이 은혜 두고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최필립보수녀님은 앳띄어 보이는데 25년전 어려서 이민 온 부모를 따라와 


 

수녀가 되었고 한국말 발음이 약간 서툴기는 하지만 정말 순수하고 선한 느낌이


 

첫눈에 천사가 따로 없이 깨끗함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수녀님이 가르켜  일요일만 골목시장이 열린다는 


 

산텔모에 가 눈요기를 하였으며 교황이 되기 전 추기경으로 계시던 


 

까테드랄 대성당에도 들려 구경을 하고 돌아 오는데 버스는 온 동네를 다 헤집고


 

다니며 20키로 거리를 두 시간 만에 근처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날씨 정보에 의하면 한낮 기온이 34도라 외출을 삼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직 서늘할 때 주교님이 출장 가시기전 지정해 주신 곳에 기념식수로 아보카도


 

묘목 두 그루를 옮겨 심었고 잔디깎기와 정원 꽃나무에 물주기로 오전을 보냈다


 

주교관은 식복사 현지아주머니가 한 분이 오전중에 3시간만 요리하고 가는 데 


 

청소는 일체 안하고 오로지 식사준비만 하고는 곧바로 가버리기 때문에


 

청소가 안되어 있었다.


 

아내는 팔을 걷어 부치고 1,2,3층 모두 대청소를 시작하였고 


 

나는 정원에 잔디깎기와 꽃과 나무에 물주기뿐만 아니라, 주차장 출입문이


 

뻑뻑하여 기름칠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집안관리를 모두 찾아서 하였다.


 

주교관 3층건물이 워낙 크고 방이 층마다 여러 개로 신학생 수십명이 머물던


 

곳이며 수영장이 있는 정원도 넓고 꽃나무도 많아 물을 줄려면 한 두시간


 

가지고는 어렵다.  


 

날씨가 어느 날은 39도까지 치솓아  점심 이후는 바깥 출입이 거의 불가능해


 

1층 거실에서 종일을 보내야 된다.


 

정월 초하룻날 성모마리아대축일을 맞아 한인성당에 다녀왔고 


 

꽃동네수녀님들과 함께 문주교님 어머니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렸으며


 

한인성당 근처에서 아나바다를 직접 실천하고 계신 자매님 가게에 들려


 

떡국을 먹고 이것저것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자매님의 사랑에


 

또 한번 놀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관광의 중심인  라 보카 (LA-BOCA)는 주교님댁이 있는


 

"산 마틴"에서 1시간 30분정도를 버스 타고 가야 되며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한인성당에도 갈수가 있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수도에 도착하여 시내구경 한번 안하고 가기에는 


 

너무 미련이 남을 것 같아 큰 맘먹고 나서기로 하였다.


 

꽃동네 수녀님들 말씀에는 시내버스를 4번이나 갈아 타도 


 

에어컨 나오는 버스를 못 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다행이 타는 버스마다 


 

빵빵하게 틀어 추울 정도였다.    

 


참고로,


 

관광지라서 비싼 파타고니아에서 며칠 머물다 대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였으니 물가가 저렴하겠지 생각했는데 착오도 한참이나 틀렸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를 비교해 보면 정말 엄청 문제가 많은 도시라는게


 

실감하게 된다.


 

가장 작은 콜라 한병이 대형마트에서 2,000원정도이고


 

배달해 주는 가정용 생수 12리터가 9,500원이라고 한다. (20리터가 아니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석회가 들어 있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


 

소매치기가 아닌 권총을 든 강도가 들끓어 치안도 매우 않좋고


 

모든 문이라고 생긴곳은 몇발짝만 나갈려고 해도 돌아서서 문부터 잠그고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다녀야 하니 신쭈()로 만든 무거운 열쇠꾸러미가 


 

주머니 한가득이다


 

어느 나라 관광지를 가도 소매치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주차장 전동 셧터 안에 주차한 내 오토바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


 

거실로 들어와 앞, 뒷바퀴를 잠그고 세콤을 켜놓고 밤에는 잠을 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한편으론 양심을 모두 버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중교통으로 시내버스나 전철에서 종종 보게 되는 


 

아기를 안고 올라 오거나 노약자를 보면 젊은이들은 서슴없이 일어나  


 

손짓하던가 불러서 까지 양보하며 앉히는 모습을 보면 


 

근본은 아직 살아 있구나 싶다.


 

또는


 

장애인도 아닌 멀쩡한 젊은이들이 큰소리로 뭐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떠들며


 

기차나 버스안을 휘젓고 다니며 화투만한 크기의 종이를 내밀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동전이 아닌 지폐를 서슴없이 꺼내 주는


 

이웃을 돕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아주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 있다.


 

남미식 핫도그라고 해야 하나?  

 


그리스 아테네에서 여러 번 사먹었던 터키식 케밥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주교관에서 가까운 산 마틴 기차역 앞에 여러 집에서 파는데  


 

입간판 그림에는 쵸리판 중에 소시지가 들어간 것이 35페소(2,000)


 

보고 들어가긴 했지만 쵸리판도 속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름이 다르고


 

가격도 달라 저 사람 먹는 것으로 똑같이 목살이 들어 간 것으로 


 

두개를 달라는 손짓 주문을 했다.


 

주머니 속에는 남은 돈이 전부 126페소밖에 안 남았는데


 

아차


 

목살을 시켰으니 낭패다.


 

빵속에 쇠고기를 갈아 숯불에 지글지글 바로 구운 통소시지를 넣기도 하고 


 

돼지목살을 손바닦만 하게 두껍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주기도 하는데 


 

짠맛이 강한 소시지보단 숯불에 바로 구운 목살이 내게는 더 맛이 있는 것 같다


 

주변 테이블의 먹는 것을 보니 콜라나 맥주 등을 함께 시켜 먹는데


 

우리는 집에 가져가 마시려고 준비한 대형슈퍼에서 사온 2리터짜리 콜라병을


 

차마 내놓고 먹을 수가 없었다.


 

코가 크고 멋지게 생긴 젊은 남자직원이 직접 테이블에 쵸리판을 가져다 주면서 


 

서울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우리부부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핸드폰을 꺼내 


 

다른 직원에게 부탁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두 개를 시켰는데 한 개 만해도 워낙 커 반씩 나눠 먹고 남은 한 개는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고 먹다 보니 주문도 않했는데 감자튀김 한 접시도 가져다 주고


 

들고 온 콜라를 마시라고 얼음을 담은 빈 컵을 두 개도 가져다 준다.


 

시큼한 야채를 담은 소스와 간장 같은 소스도 가져다 주며 넣어 먹으라고


 

가르쳐 주었고 휴지도 뭉텅 가져다 준다.


 

계산도 지난번 수녀님하고 다른 곳에서 사먹었을 때는 소시지만 넣으면 35페소,


 

목살을 넣으면 개당 80페소(5,000) 받았는데 목살 두개를 100페소만


 

받은 것은 은근히 부족한 돈을 걱정했는데 내 주머니 사정을 어떻게 알고


 

이 친구가 특별 인심을 쓴 게 분명하다.


 

꽃동네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항상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알아서 채워 주신다 고 ....


 

이런 맛이 여행자의 행복이랄까?


 

아르헨티나의 친절한 젊은이를 만나 맛있는 빵에 더욱 행복을 느낀다


 

한 개만해도 워낙 커서 둘이 나눠 먹고 한 개는 포장해 가지고 와


 

저녁밥과 함께 먹었다


 

콩나물,오이지,조개젓,고추장은 수녀님들이 매번 가져다 주셔서 잘 먹고 있으며 


 

와인은 1리터짜리 팩이 36페소(2,500원정도) 를 돈을 주고 사봤는데 


 

매일 끼니에 한잔씩 먹다 보니 조금은 와인 맛을 알 것만 같다.


 

오늘 산 와인은 약간은 싱거워 보여 팩을 드려다 보니 알코올 돗수가 9%였다.


 

그 동안은 주교님은 마시다 남겨 놓은 와인 병이 여러개 있었고 출장을 가시며 


 

그대로 두면 식초가 된다며 웃으시며 모두 비우라고 하셔서 덕분에 여러 종류의


 

와인 맛을 보게 되었다


 

 

 

 

꽃동네수녀님 두 분이 활동하고 있는 성당의 주임신부인 이태리할아버지는



이곳에 선교사로 오신지 벌써 40년이 넘으셨다고 한다.



신부님은 미사 참석할 때 마다 우리부부를 위해 여행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직접 해 주신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신부님이 말씀하실 때 신자들이 우리를 웃으며 쳐다봐 


 

왜 그러는가 했더니 나중에 꽃동네수녀님이 통역을 해주셨다.


 

신부님이 축복 기도해 주셨다고,

 



 

 

 

 

2018 1 21


 

사진으로 보았던 로댕의 진품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국회의사당앞 공원에 있다.


 

의외로,


 

공원 한가운데 특별한 방범도 없이 팬티조차 안 입은 채로 


 

팔을 괴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듯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마침


 

우리보다 먼저 온 한국인관광객 세 명이 있었고 그 중에 한 분은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 우리도 엿듣게 되었다.


 

설명하시던 분은 사진을 찍어 주시겠다고 하여 카메라를 드렸고


 

본인은 51년째 여기 살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이곳에서 한인회장을 오랫동안


 

하신 분이며 또 다른 분은 현재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학장이라고 하셨다.


 

저희는 은퇴 후 오토바이 한대로 유라시아를 돌고 두 달 전부터 칠레를 시작으로


 

파타고니아까지 내려갔다가 여기까지 왔으며 선교사님들을 찾아 뵙고 다니는


 

중이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무슨?, 아직 젊어 보이는데 벌서 은퇴를 하였느냐고 하셨다.


 

작년에 환갑이 지났다고 했더니 학장님이 당신도 작년에 환갑이 지났다고 


 

57년생 동년배를 만나 반갑다며 악수도 하였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다.


 

작별 후 우리는 걸어서 카테드랄 대성당으로 이동하여 11시반 교중미사를 드렸다.


 

지금까지 뵌 신부님 중에 가장 뚱뚱하다 못해 칠로에섬 캠핑장 주인과 비슷한


 

체구를 가지신 신부님이 미사 집전을 하셨다.

 

 


 

 

 

 

2018 1 28일 일요일


 

오토바이 한대로 세계일주를 나선 이후 생전처음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대낮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황님이 계셨던 카테드랄(대성당) 바로 앞 넓은 대로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 당했으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 십여 미터를 갔는데


 

갑자기 옆에서 걷던 안데스 원주민 모습의 작달막한 중년남성이 다가와


 

휴지를 전해주며 위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떨어져 나와 아내의 등뒤에 맞았다며


 

친절히 닦아 준다.


 

처음엔 원인을 몰라 새똥을 맞은 줄 알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휴지를 얻어 아내의 등을 닦아 주다 보니 


 

아뿔사, 한 두 군데가 아닌,


 

엄청 많은 양이 등뒤에 뿌려져 있었고 나란히 걷다 보니


 

내 등도 똑같이 묻은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체불명의 액체를 떨어뜨린 위치가 위를 아무리 쳐다봐도 


 

국기가 게양된 관공서 건물은 일요일이라 창문이 모두 굳게 닫혀 보였고 


 

위에서 뿌렸다기 보다는 등 뒷부분만 묻은 것으로 봐선 누군가가 뒤따라 오며


 

뒤에서 장난을 친것이 분명한데 직접 눈으로 보질 못했으니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원주민 남자는 친절하게도 등뒤 곳곳을 한참을 닦아 주는데 점점 본색이


 

들어 나는게 보인다?


 

나는 아내의 등에 묻은 것을 닦아주느라 정신 없었고


 

이 남자는 내 등뒤에 서서 티셔츠와 바지에 묻은 부분을 닦아주었고


 

바지 앞 주머니까지 손으로 더듬으니 느낌이 퍼뜩 예감이 안 좋다.


 

이놈 봐라!


 

아내는 항시 외국에 나오면 외출 시에는 비상금은 물론일체 휴대품을


 

소지 하질 않는다.


 

집밖을 나올 때만 해도 주머니 속에는 몇 푼의 현금이 가지고 있었지만


 

미사헌금으로 모두 내었기 때문에 텅 비었고


 

나도 바지주머니 속에는 아무것도 넣고 다니질 않기 때문에


 

겉에서 만져봐도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았을 터이고


 

문제는 카메라와 핸드폰, 신분증 등을 넣은 허리쌕으로 어깨끈과


 

허리벨트가 달린 가방을 앞쪽으로 배꼽 앞에 한 손으론 가방귀퉁이를


 

항상 틀켜 쥐고 다니는데 이놈은 묻지도 않은 가방을 닦아 주는


 

시늉을 하며 잭크를 열려고 한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내 눈 앞에서?


 

아무리 내가 정황이 없어도 그렇치 이놈 참 대단하다


 

그것도 아내는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서있는데,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해 전 유라시아 여행때부터 사용해 온 bmw 허리쌕 인지라 많이 낡아서


 

초칠을 했어도 잭크가 뻑뻑하여 잘 열리질 않는 게 불편하였다.


 

이놈이 고장 난 잭크를 열어 볼려고 휴지로 닦아 주는 시늉을 하면서 여러 번


 

시도를 했는지 양 옆에 있는 작은 주머니는 이미 열려 있었고 원래 안에 들어


 

있는 게 없었지만  한 손으론 절대 못 열고 다른 쪽을 잡고 당겨서 열어야만


 

열리는 뻑뻑한데다 잭크를 여는 손잡이 쪽이 내 한 손 쪽에 있어서 어쩌질 못하고


 

포기했나 보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이놈이 도둑놈이라는 감은 전혀 없었다.


 

몇 차례나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으니....


 

뒤돌아 서서 아무리 위로 건물을 쳐다봐도 뿌릴만한 장소가 아닌 데...


 

잃어 버린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옷에 묻은 이상한 액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비릿하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 크게 당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위안으로 오후 3시가 넘도록 배고픔도 잊고 집까지 왔다.


 

역시,


 

매일 눈을 뜨면 아내와 함께 아침기도를 바치길 잘했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교관을 떠나기 전에 그 동안 도움 받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이곳 사람들이 많이 먹는 엠빠나다를 만들어 가져다 드리기 위해 


 

현지인 주교관 식복사인 수산나자매님한테 도움을 청하였다.


 

들어 가는 재료는 한국식 만두와 흡사하나 만두피를 예쁘게 말아 오므리는


 

작업이 한 두 번 해봐서는 예쁘게 안 된다고 아내는 말한다

 

 

가방 끈에는 예전에 수녀님이 주신 여행자수호성인과 묵주가 항상 들어 있다.






 

 

2018 25.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3개국이 걸쳐있는 이과수폭포를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땅 푸에르토 이과수를 향해 새벽 5시에 출발하였다.


 

대략 1,300km 거리를 이틀로 나누어 갈 계획으로 캠핑장을 찾아 놨으나 


 

막상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길이 너무 좋아 시속 110~ 140키로 속도로


 

14시간만인 저녁 7시경에 숙소에 도착하였다.


 

아내는 사전에 버스티켓을 구입해 5일 오후 215분에 출발하면


 

다음날 오전 10시경에 도착하는 버스 편을 이용해 숙소에 먼저 찾아 들어가고


 

나중에 나와 상봉하기로 했는데 나 혼자 홀가분하게 질주 할 수 있었고 


 

막상 예약한 숙소에 하루 전날 도착하였더니 당일은 빈방이 없어 근처에


 

다른 숙소를 소개를 해주어 혼숙 도미토리에서 자고 다음날 터미날에 마중


 

나가 아내를 상봉하였다.


 

밤새 버스로 오느라 시달려 피곤한 아내를 위해 오늘 하루는 종일 숙소에 쉬고 


 

다음날부터 이과수 폭포를 보기로 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이동하였고 


 

3개 코스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처음은 미니열차를 타고 가서 볼 수 있는


 

"악마의 목구멍"도 보았다.


 

엄청난 광경을 한마디로 표현할 상황이 아니다.


 

그 동안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온갖 풍경을 모두 보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장관이 또 있구나!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더위 탓으로 이 장관을 안보고 그냥 다른 시원한 나라로 지나쳐 갔더라면


 

얼마나 후회 할뻔했을까?


 

14시간을 달려 온 보람을 만킥 하고도 남는다


 

중국의 황과수폭포가 세계 4대폭포안에 든다고 해서 엄청 웅장하구나 했더니 


 

그건 새발의 피정도 밖에 안 된다.


 

오죽했으면 어느 미국 대통령부인이 이과수폭포를 보고 


 

"나이아가라 폭포는 어쩌면 좋아?" 했을까! 

 

 

죽기 전에 반듯이 보고 죽어야 할 장관 중에 하나인 것이 틀림없다.


 

하나도 아닌 여러 코스에서 볼 수 있는 폭포가 수백 개가 넘는다니  


 

웅장하다 못해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돌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가 보다.


 

다음날은 브라질 쪽 이과수를 보기 위해 가깝지만 버스를 타고 양국 국경검문소을


 

내렸다 타기를 반복하며 도착한 이과수는 어제와 달리 이곳, 브라질 쪽 이과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한마디로 표현해서 그 동안 세상에서 본 것 중에 그 어느 것 보다 최고다.


 

엄청난 굉음으로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를 바로 몇 미터 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곳을 가 본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한 광경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

 

 

푸에르토이과수 숙소에서 파라과이 아순시온 한인성당을 가기 위해서는



세 나라가 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 다리를 건너면 브라질국경검문소를 통과한 후


 

불과 몇 키로만 가면 또 다시 다리를 건너 파라과이 국경검문소가 있다.


 

파라과이 국경검문소 쪽은 일부러 찾아가서 통과한다고 신고하기 전엔


 

양국이 서로 국경선 없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같다.


 

북새통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보따리무역을 양국이 허가 없이 왕래하도록 해주었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넘나드는 인파가 마치 명절 대목 같다. 


 

오토바이 여행자뿐만 아니라 외국인은 그래도 반듯이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아 놔야 다시 제 삼국으로 넘어 갈 때 순조롭게 출국할 수가 있지


 

도장을 안받고 쉽게 입국했다가는 출국할 때 벌금에 잘못하면 구속까지 당한다.


 

말은 안 통하지만 제복 입은 사람을 붙잡고 오토바이 입국증을 만들어 주는 곳을


 

물어 보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장소를 가르쳐 주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며


 

서류를 보여주며 여러 번 옮겨 다니다 보면 그래도 대부분 해결이 된다.


 

파라과이 땅은 산악지역이 없는지 가도 가도 기름진 황토흙과 정글이 많으며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에 하나이지만 땅이 풍요로워 나뭇가지를 꺾어 꽂아만 두면


 

자라는 곳이라 가축들도 사료 없이 풀만 뜯어먹고 자라도 충분해 보였다.


 

아순시온 한인성당에는 안동교구에서 오신 정도영 베드로신부님이 계셨으며


 

초창기 이민자들이 세운 성당 건물은 크고 터가 넓으며 부속 건물들이 많았다.


 

우리부부는 망고와는 참으로 인연이 없나 보다.


 

그 흔하디 흔하다는 망고를 제철이 지난 뒤에 방문하였다니..


 

신부님 말씀은 당신은 하루에 세 개를 잡수시는데 며칠 전까지

]

 

안마당에 있는 망고나무에서 떨어지는 망고가 하룻밤에 한 자루씩이나 돼


 

내다 버리느라 힘들었다고 하신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덜 익어서 못 먹고 왔는데 이곳은 철이 지나 못 먹다니


 

안타깝다. 언젠가는 실컷 먹을 때가 오겠지. 


 

파라과이 아순시온은 50~60년전에 남미의 이민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배로 도착하여 내륙으로 이곳까지 들어와 


 

농사를 처음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도시로 나가 유대인들 밑에서 직조기술을 익혀 의류사업으로 


 

전업을 하게 되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많은 한인교포들이 


 

의류사업을 하고 있었듯이


 

이곳 역시


 

듣기에는 의류사업에 종사하는 한인교포가 많다고 한다


 

하루는 노부부 신자가정의 저녁식사 초대로 방문을 가게 되었는데


 

파라과이 아순시온 외곽에서 양계농장을 크게 하고 계셨다.


 

현지주민인 직원들 여러명 이 계란을 포장하고 있었으며  


 

보기에도 워낙 신선하고 깨끗해 보여 한개를 날계란을 먹어보니 달콤한 것이


 

워낙 깨끗하여 물세척 했나 보다 했는데 주인 말씀이 산란한 그대로 세척 안하고 


 

따끈할 때 수거하여 곧바로 가까운 곳에만 공급하는데 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니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신선한 유기농 계란을 좋아할까?


 

정성이 듬뿍 담긴 채로 먹는 사람을 위해 배려한 마음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초대한 식탁에는 손수 무농약으로 기른 야채며 불고기와 갈비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으며 후식으로 특별한 맛의 아이스크림과 


 

영국에서 가져왔다는 차까지 후한 대접을 받았다.


 

파라과이 육사를 졸업한 큰아들은 현재 대통령 경호를 맡고 있는 소령이며


 

둘째 아들은 의사로 인정받는 단단한 소아과 권위자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귀하디 귀한 초란과 일반 계란을 여러 판이나 주셨다.


 

넉넉한 마음씨에 너무 감사 드린다.


 

다음날 저녁도 신부님 가정방문 초대에 우리부부도 따라 나섰는데


 

속으론 불청객이 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민 온지 오래 되었고 현재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창고 관리로 소일 삼아


 

하시는데 솜씨가 좋으셔서 가죽공예로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품들이


 

집안 가득하였다. 이 가정도 대단한 성가정임에는 틀림없다.


 

내륙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싱싱한 전복과 생선회를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 서울에서 먹던 어느 요릿집보다 맛이 훌륭하였다


 

한인성당은 정신부님이 오신지 불과 3년만에 짧은 부임기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셨다


 

여기 저기 신자들이 불편해 하는 모든 곳을 새롭게 손수 뜯어 고치셨고


 

갈수록 연세가 많아지는 교민 세대들을 위해 납골당을 성당 뒤뜰에 마련하여


 

자손들이 자연스럽게 언제든 성당을 방문하여 조상을 뵐 수 있게 공사 중이었고


 

야외에 있는 식당도 신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새롭게 꾸미려고 구상 중이셨다.


 

신부님은 만능 건축가이며 그 동안 방치된 대형 창고를 수리하여 인근 교민들


 

중에 누구나 와서 운동할 수 있게 배드민턴 코트를 4개를 설치하여


 

교민 화합에도 일조를 하고 계셨다.







먼저


 

아르헨티나 차코의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두분과 


 

아순시온 한인성당 주임 정 베드로신부님께 감사의 인사 드림니다.






 

천사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순시온에서 출발하여 아르헨티나 레시스텐시아를 지나 


 

우유니소금사막을 가는 길목에 차코지역에서 봉사하시는 


 

한국인 수녀님 두분을 뵙고 정말 깜짝 놀랐다.


 

오지중에 오지인 열악한 환경속에서 굳굳히 불행한 이들을 위해 


 

자기 희생을 다하여 봉사하시는 두분을 뵙고 정말로 탄복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비가 적게 내리는 곳이며 수도시설이 없어 


 

빗물을 받아 의존해야 되고 날씨도 덥고 습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에 땀이 주루루 흐르는데 모기떼는 대낮에도 극성이라 


 

노출된 피부엔 모기퇴치제를 연신 뿌려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서 오신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두 분은 용감하게도


 

이곳에서 모든 어려움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불우한 가정을 찾아 돕고


 

문맹 퇴치를 위해 도서관을 만들어 놀이시설 조차 없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교실을 만들어 함께 글을 가르치는 일들을 하고 계셨다.


 

마침


 

방문했을 때 와이파이 공유기를 오래 전에 구입해 놓고도 연결할 줄을 몰라


 

설치해 드렸고 핸드폰도 무선 와이파이가 되게 끔 해결해 드렸다.


 

,


 

온 동네를 얼마나 타고 다니셨는지 필수품인 생활용 자전거 타이어가 닳아 


 

펑크가 나 있어 새것으로 모두 교체하여 다시 탈 수 있게 점검해 드렸다.


 

수녀님 두 분은 아이들이 방학을 한 틈을 이용해 


 

그 동안 비좁았던 어린이도서관을 다른 곳으로 옮겨 수녀원 옆에 빈 건물을 


 

개조하여 좀더 편하게 공부도 할 수 있게 확장공사를 하고 계셨다.


 

한번은 수녀님을 따라 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어린 아이가 다섯이나 되며 가장인 남편은 없고 홀 엄마가 애들을 


 

돌보기엔 너무나 가난하여 힘들게 지내는 가정을 도와 주기 위해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쇠고기를 사 들고 가셨다.


 

여담으로 주민들에게 식사를 하였느냐고 물으면 빵이나 기타 음식을 먹었어도 


 

쇠고기를 안 먹었으면 그건 식사를 안 한 것이라 안 먹었다고 한단다.


 

수녀님이 이 집에 처음 방문 했을 때는 매트리스 한 개에 온 가족이 누워


 

새우잠을 잤고 입을 옷도 없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상인들의 후원을 받아


 

지금은 여러 살림살이까지 지원을 받아 그래도 굶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큰아들은 일거리를 찾아 소몰이를 해주고 하루에 100페소씩 받아 


 

집안을 돕고 필요한 학용품도 샀다고 수녀님께 보고하는 것이 너무 기특하여


 

수녀님은 꼭 안아 주셨다.


 

이틀 밤을 수녀님 계신 곳에서 머물며 제대로 한가지 도와 드리지도 못한 것이


 

너무 죄송스럽고 귀한 빗물까지 소비하였으니 왠지 마음이 무겁다.


 

도착한 저녁은 작은 세숫대야 한 개로 군대식 샤워를 했지만 


 

다음날은 워낙 땀을 많이 흘려 비눗물을 씻느라 두 대야 반을 썼으니


 

죄송할 수 밖에...


 

구글지도에는 호텔도 있었고 종합병원도 있다고 표시되어


 

아순시온에서 출발하여 논스톱으로 수녀님들 계신 곳에 도착하였고


 

ATM에서 페소를 인출할 생각이었는데 난감하게도 없었고 호텔은 커녕


 

병원은 있으나 시설이 마을 보건소 수준이었다


 

떠나는 날 가장 난감했던 것이 새벽 6시에 수녀원에서 출발하여 먼저 가까운 


 

주유소에 들어가 고급 휴발유를 가득 채우고 보조 탱크 두 개까지 채웠는데 


 

아뿔사!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체크카드가 안 되는 주유소였다.


 

385페소 중에 수중에는 이과수폭포에서 쓰고 남은 175페소가 있었고 


 

모자란 돈이 210페소뿐인데 카드를 안받을 줄이야,


 

천만 다행으로 아순시온 한인성당  정베드로신부님이 볼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남은 돈이라며 가면서 쓰라고 약간의 볼리비아 돈을 


 

봉투에 담아 주셨는데 그것을 꺼내 셈 해보니 액수가 모자란 210페소와


 

똑 같았다.


 

정말


 

베드로신부님 선견지명이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신부님, 수녀님 !!!


 

여행길이 이렇게 가슴 벅차고 뿌듯할 줄이야!


 

달리는 내내 생각만해도 우리부부는 정말 축복 받은 부부입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 도착하다.


 

차코에 계신 수녀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볼리비아 땅으로 들어선


 

우리는 투피자에서 3,000m이상 고산 적응을 위해 이틀을 머물기로 하였다.


 

이곳은 폴 뉴먼의 내일을 향해 쏴라영화의 촬영지로 실화라고는 하는데


 

마지막 이곳까지 피신와서 총살 당한 곳으로 유명해


 

작은 동네지만 골목마다 주점 앞에는 서부영화의 총잡이 사진이 걸려있다. 


 

우유니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길을 피해 포토시로 돌아


 

안전하게 갈 생각이었으나 호텔주인의 권유로 얼마 안 되는


 

약간 비포장길만 지나면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아무래도 현지인이 잘 알겠지 싶어 따랐다가 엄청 후회를 하였다.


 

왠걸,


 

대부분이 비포장길은 아스팔트 공사 진행 중이라 더 엉망진창이었다. 


 

푹푹 빠지는 진창에 아슬아슬하게 굳은 땅을 찾아 겨우 도착했는데


 

우유니 마을 역시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량한 허허 벌판에 마른 나뭇가지가


 

모래바람에 날리는 그런 풍경이었다.


 

첫날은 오토바이를 타고 사전 답사를 다녀 왔는데 소금사막에


 

고인 물이 깊어 안으로 깊이 들어 갈수 없어 초입에서 기념 촬영으로 끝내고


 

다음날 패케지투어를 신청하였고 그룹을 모을 때 가능하면


 

한국인을 따로 모아 달라고 신청했더니 다행이 총 8명이 되었다.


 

오랜만에 서로 소통이 잘되니 좋았으며 싸간 음식도 서로 나누며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촬영을 위해 온갖 포즈를 다 잡고


 

서로 조언도 해주며 타향에서 만나 정을 나누니 절로 흥이 났다..








기적이 또 일어났다.


 

항상 오토바이에 앉아 출발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모경을 바치는 일이다.


 

우리는 우유니소금사막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오룰로에 계신 수녀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점심식사를 함께하면 좋겠다는 수녀님의 문자를 받은 지라


 

새벽에 일어나 점심 전에는 도착할 요량으로 320km남은 거리를 120km


 

속도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170km를 남기고 뒷타이어가


 

1cm정도 찢어져 때울 수도 없게 되었다


 

주변엔 수십 킬로를 지나 오면서 황량한 초원뿐이었고 가끔 사슴 비슷한 동물


 

몇 마리를 보았을 뿐인데 도움 요청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정말 난감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 1분도 안되어 대형버스가 오고 있었다.


 

한 손을 번쩍 들었는데 버스는 정차를 하였고 올라 타 기사한테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고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선뜻 내주어


 

오룰로수녀님께 전화를 걸어 


 

"수녀님, 타이어 펑크가 크게 나 수리를 못하니 아내 엘리사벳를 버스로


 

태워 보낼테니 수녀님이 버스터미날로 마중 나오셔서 트럭을 수배해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버스 기사가 내려와 살피더니 버스 트렁크에 실을 수가


 

있다고 실어 보자고 손짓을 한다.


 

나는 노! 안돼,


 

크고 무거워 못 실어!


 

그러나 기사는 못 알아 들었는지 트렁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두 개의


 

짐칸 중에 한쪽으로 몰아 옮기고 빈 칸에 싣겠다고 뒷바퀴를 들어 올리라고


 

손짓을 한다.


 

얼래? 정말 실리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내려와 초원에 거름을 주고는 합심하여 들어


 

올려 실으니 쏙 들어 갔다.


 

분리한 케리어박스 3개와 가방 3개도 모두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라 타 


 

편안히 3시간후 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이미 수녀님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정말 꿈같은 기적이 이루어졌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이렇게 기적 같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니 


 

뒤돌아 보면 이건 정말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의 기적이 틀림없다.


 

터미날 바로 앞에 주차장이 포함된 호텔에 들어가 주차하고 수녀님과 함께


 

수녀원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는데 수녀님들은 요리사가 울고 갈 정도로 솜씨가 


 

정말로 대단하여 맛이 꿀맛이었다.


 

옆 건물에 어린이 공부방에 들어가 아이들 사진도 찍고 작은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 하며 뛰며 놀아 주었는데 몇 분도 안돼 숨이 차 가뿐


 

숨을 몰아 쉬어야만 했다.


 

고도가 4,000미터가 넘으니 숨이 찰 수밖에, 더 뛰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인사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토바이 부품가게를 찾아 타이어를 구입하여 수리점으로 들고가 교체를


 

의뢰하였다.


 

타이어가격이 300볼리비아인데 교체비가 150볼리비아가 들어가 


 

450볼리비아(7만원)를 지불하였는데 어째 너무 싼 것이 불안하다.


 

은행에 들려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하였는데 두 번은 되고 두 번은 실패하여


 

걱정 반,호텔에 들어와 와이파이를 연결하여 통장잔액조회를 해보니


 

역시, 모두 4번 인출로 표시되었다.


 

다시 은행을 찾아 항의를 하니 기계오류를 인정은 하나 바로 취소가 안되고


 

한국에 연락해서 신고하면 은행간에 연락해서 반환하게 된다고


 

수녀님이 중간에 전화로 통역을 해주셨다.


 

 

하는 수 없이 국제전화만 하게 생겼다.






 

다음날,


 

코차밤바에 계신 수녀님을 뵙기 위해 일찍 나섰는데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으나 220KM중에 100KM 비포장구간에 


 

아스팔트 포장공사구간이 많아 4시간 걸려 도착하였다.


 

근처에 도착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마중을 나와 계셨다


 

점심을 먹은 후 잔디 깎는 기계가 고장이 났다고 하셔서 뜯어보니 


 

플라스틱 팬이 열에 녹에 모터가 돌지를 않았다.


 

시내중심가에 들려 수리를 맡기고 토요일에 찾아다 조립하니 제대로 돌아갔다.


 

텃밭도 삽으로 흙을 몽땅 뒤집어 업어 채소를 심을 수 있게 하였고 


 

코차밤바의 명소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예수상을 보고 왔다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 지역은 가장 많은 우리나라 선교사님들이 활동하고 계셨고


 

처음 방문한 오키나와 성당을 중심으로 강신부님을 비롯해 두 분이 더 계셨으며


 

200개가 넘는 공소를 나누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4륜구동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오끼나와 명칭은 오래 전 일본인이 아닌 오끼나와섬 원주민들이 피난와 살면서


 

이곳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여 기반을 크게 이뤄 명칭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하룻밤을 오끼나와성당에서 지내고 


 

다음날 일찍 대구교구의 김동진 제멜로 주임신부님과

 

 

최용석 스테파노신부님의 선교지로 따라 가기로 하였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산타크루즈 시내에 장보러 한번씩 나오게 되는데


 

산 안토니오 시까지 가는 길은 230키로의 절반이 비포장길로 곡창지대인 


 

이곳은 추수가 끝나는 시기라 저녁부터 곡물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레일러의


 

행렬은 끝이 없고 흙먼지가 눈앞 10미터도 안보여 파인 도로는 어찌나


 

덜컹거리는지 제멜로신부님이 절대로 오토바이를 타고는 갈수가 없다고


 

자동차로 함께 가자고 하셔서 비루비루 신부님들 계신 곳에 보관하고


 

나서길 참 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산 안토니오" 시는 볼리비아 인디오 마을로 원시림 속에 국가지정 보존지역으로


 

우리나라 전남북도 만한 크기로 자연 그대로 우거진 원시림 속에 띄엄띄엄


 

몇 가구씩 모여 살고 있으며 조금 큰 마을에는 어김없이 성당공소가 있고


 

성당 정문 앞으로 넓은 광장 가운데는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다


 

두 분의 한국 신부님들은 수십 개가 넘는 공소를 나눠 차례로 방문하여


 

미사를 드리는데 덜컹거리는 산속 길을 본당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40


 

먼 곳은 하루에 한 곳 정도를 방문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전날 도착한 학사님 두 분과 함께 


 

최신부님은 우리를 공소미사에 데리고 다니셨고 


 

나온 김에 콘셉시온에 계신 수녀님들까지 방문하였고 


 

다음 도시인 훌리안에 계신 수녀님들까지 찾아 뵐 기회를 주셨다.


 

하루에 이동한 총 거리는 충청도 한 바퀴를 돌아 온 것처럼 몇 백킬로를 달려


 

암흑 같은 흙먼지를 뚫고 밤 11시가 넘어서 사제관에 도착하였다


 

산 안토니오 성당은 지금까지 다녀 온 수많은 선교지중에 특히 이곳이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신부님은 이곳에 젊은 영농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해 넓은 초지를 조성하여 젖소를


 

길러 새끼는 젊은이들에게 분양하여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세월 오래 전 일로 우리는 신혼 초에 귀농하여 부모님 모시고


 

잠시지만 초지를 조성하고 집을 짓고 목장을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인력이 없는 이곳에 내가 딱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에 할일 없고 갈 곳이 없으면 이곳으로 돌아와 봉사하며 살고 싶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한 순간에 지나간 듯 아쉬움이 남았고


 

출발 당일인 일요일은 교중미사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콜롬비아 수녀님 두 분이


 

손수 차려 주셨고 최 스테파노신부님은 특별히 떠나는 나를 위해


 

통돼지 바비큐를 주문해 주셨는데 맛있게 먹기는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심히, 신부님들이 걱정이 된다.


 

현재 초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고 어미젖소도 사다 키우고 있으며 앞으로 할 일은


 

새끼를 내어 우유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치즈도 만들고 남는 찌꺼기로 돼지도


 

길러 판매할 생각으로 돈사를 짓고 있는 것을 봤는데


 

최스테파노신부님 말씀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요리해서 가져 온 새끼돼지 바비큐가 우리 돈으로 35,000원이라니?


 

그것도 뱃속에 찹쌀을 넣고 껍대기가 바삭하게 구워서 배달해 준 가격이 그렇다면


 

도대체 어미돼지 한 마리 가격은 얼마나 될까?


 

곡물가격이 아무리 저렴하다 해도 힘들게 키워 어미돼지까지 만들려면


 

6개월은 먹여야 되는데 풀만 뜯어 먹일 수도 없고.  


 

식사가 끝나고 출발에 앞서 수녀님 두 분은 저에게 강복을 주시겠다며


 

머리에 손을 얹고 남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다.

 

 




 


 

 

마추픽추를 보기도 전에 큰 고비를 넘겼다.


 

볼리비아에서 한달 이상을 머물고 코차밤바 수녀님댁에서 출발한 우리는


 

마지막 밤을 페루 국경검문소 넘기 직전인 티티카카 호수가 보이는


 

코파카바나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오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굳은 날씨에 라파스가 지척인


 

엘알토는 고도가 4천미터가 넘었고 인구는 왜 그렇게 밀집해 사는지


 

도로가 인산인해로 차선도 없고


 

역주행이 다반사이며 횡단보도는 아예 없어 아무데서나 건너 다니고


 

질퍽한 진흙탕 길 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안간힘이 써 나갔다.


 

자매수녀님 두 분이 엘알토 인근에 계신 것을 알았지만 이메일을 사전에 드렸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찾아 뵙기가 어려워 그냥 지나쳐 티티카카 호수까지


 

가기로 하였다.


 

코파카바나에 예약을 한 탓에 아침부터 12시간을 달려 저녁 무렵에 도착하였고


 

호숫가 포장마차에서 송어구이를 시켜 먹고 잠들었는데 작은 목소리로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아내가


 

나 추워


 

몸을 만져 보니 말로만 듣던 사시나무 떨 듯 한다는 표현 그대로


 

덜덜 떠는데 겁이 덜컥 났다.


 

이 사람 이러다 일 나는 것 아니야?


 

구급약으로 우황청심환 두알과 고산병약, 소화제, 두통약 등을 한꺼번에 먹이고


 

침낭을 내 것까지 둘둘 감고 두 팔로 꼭 끌어 앉고 대략 30분정도 지나니


 

이마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이동네는 비행장는 고사하고 병원도 없어 보이는 외진 마을이라 아파 누우면



큰일이다 싶었다.



다행이 차츰 이마에 열은 오르고 몸이 따뜻해지며 누워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바로 리마에서 한국으로 들어 가는 티켓을 알아 보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5개월을 걸려 왔는데 쿠스코 마추픽추는 꼭 보고 가야지



고산병 무서워 안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한 순간에 고산증세가 올지 몰라 좀 더 신경 써서 약을 꼭 챙겨 먹고


 

대비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건강이 조금은 회복된듯하여 다시 출발을 하였다.


 

호텔을 출발한지 불과 10여분만에 볼리비아 국경초소인지 경찰은 길을 막고


 

오토바이를 멈추라고 손짓을 하였다.


 

멈춘 위치가 약간 오르막 이었고 아내는 뒤에 올라 타 있는 상태에 그만


 

경찰관이 지켜 보고 있는 바로 앞에서 다리에 힘이 빠져 중심을 잃고


 

그대로 옆으로 꽈당 하고 나뒹굴고 말았다.


 

인근에서 지켜 보던 경찰들까지 놀래 달려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찰관은 아파하는 아내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 발을 주물러 주기까지 하였다.  


 

원래 친절한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검문조사는 뒷전이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한지 여행담 듣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동안 내가 편견이 심했나 보다.


 

길에서 볼리비아 경찰을 만나면 비상금을 항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친절을 베풀고 편안하게 검문소 안내까지 받게 될 줄이야.


 

볼리비아와 페루 두 나라가 한 건물 안에서 나란히 통관업무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은 또 처음 보았다.


 

양국이 우애가 깊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 데..

 

 

 




 

 

전주교구 전보근 안드레아신부님을 뵙다.


 

쿠스코 가기 전 150km 지점에서 마을로 40km를 더 들어가면 


 

산속 깊숙한 잉카의 후예가 모여 사는 전통 복장 그대로 생활하는

]

 

원주민 마을에서 한국 선교사님을 뵙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발 고도가 무려 4,150m,


 

우리는 하룻밤 생존하기조차 힘든 곳에서 200여개의 공소를 선교하시는 


 

한국 신부님의 저력에 고개가 먼저 숙여진다.


 

전주교구에서 오신 전보근 안드레아신부님은 열정이 넘치셔서 


 

에스파냐어를 능숙하게 하지만 원주민들과 생활하기 위해 토속언어인 케츄아어를 


 

다시 공부하고 계셨다.


 

원주민 신자들은 케츄아어 밖에 할 줄 몰라 신부님은 미사를 에스파냐어로 하고


 

교리교사인 원주민 아저씨가 듣고 케츄아어로 미사전례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원주민 할머니들은 시계가 없다 보니 성당 종소리에 따라 미사에 나오며 


 

미사 강론 중인데도 뒤늦게 들어 온 할머니는 서슴없이 제대 앞으로 나가 


 

알록 달록한 등짐을 풀어 집에서 구워 온 빵이며 물,음료수 등을


 

제대 앞에 놓고 들어 간다.


 

!,


 

이곳 원주민들은 그래도 옛날 전통방식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을 손수 만들어 


 

미사 때 가져와 바치는 구나?


 

멀리서부터 성당에 오느라 미사시간은 좀 늦었지만 대단한 정성을 가지고 


 

커다란 2리터 물까지 제물로 준비해 가져왔으니 얼마나 신심이 두터울까?


 

나는 속으로 신부님이 미사 끝나면 빵을 조금은 떼어 주시겠지?


 

성찬 전례가 끝나고 마침기도 전에 신부님은 빵과 음료에 축성을 해 주셨고  


 

신자들은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제물을 주섬 주섬 챙겨 알록달록한 보자기에


 

모두 싸가지고 등에 메고 나가셨다.


 

신부님!


 

저기 있던 빵과 음료수 신부님 드릴려고 가져 왔던 것 아닌가요?



아니고


 

집에서 먹을 음식을 축성 받아 갈려고 메고 온 것입니다


 

미사보단 제삿밥에 눈독 드린 내가 어리석었지....

 

 

 



 

마추픽추(2,400m)는 쿠스코(3,400m)보다 낮은 지역으로 

 

고산병에 시달린 아내가 조금은 살 것 같다고 한다.

 

그 동안 볼리비아에서부터 시달린 고산증세는 4,500m를 수도 없이 넘나들었으니

 

적응도 할 법한데 갑자기 머리 아프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고산병엔 약도 없고 무조건 낮은 지역으로 내려 가야 살수 있다는데 해안가까지 

 

여기서 몇 일을 달려야 하고  방법은 비행기를 타든지,

 

병원에 가 입원하고 산소호스를 입에 달고 다니는 수 밖에 없단다.

 

쿠스코에 도착하여 마추픽추까지 다녀오는 방법을 팩키지 상품으로 구입하여

 

기차와 버스를 포함한 영어가이드와 한국인 일행으로만 구성하여 다녀 왔다

 

 

 

 

 

 

페루 고산지역의 뿌교에서 한국수녀님을 뵙다.


 

한국수녀님 한 분이 장애복지시설을 돌보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나스카 가는 길목인 중간지점이라 뿌교를 들려 찾아 뵙고 가기로 하였다.


 

쿠스코는 해발 3,000미터에 있고 나스카로 가는 길목에 뿌교라는 작은 도시는 


 

바다가 가까운 낮은 곳으로 고산증은 조금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왠걸


 

가는 길은 한계령 꼬부랑길은 아기수준이고 한눈에 아래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꼭대기까지 S자로 수십 개가 층층이 보이며 얼마나 좁고 급경사인지 


 

대형차가 오면 코너에선 양 차선을 모두 차지해 비켜 줄 공간이 전혀 없어


 

급히 지나치던가 미리 멈춰야지 사고를 피할 수 있다.


 

8시간을 대부분 정상인 4,000m ~ 4,600m까지 오르락 거리며 달렸으며


 

먼발치에서 시커먼 먹구름을 보며 달렸는데 마른 번개가 번쩍거린다.


 

멀찍이 보기에는 장관이라 할 수 있으나 가까이에서 번쩍이면 소름이 오싹하고


 

며칠 전에 전보근신부님한테 들은 바로는 최근에 고산 위에서 목동들이 번개에


 

맞아 집단으로 양과 함께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는데 


 

어쩌면


 

안데스 산들은 하나같이 작은 나뭇가지 하나 자라지 않는 푸른 초원뿐이고 


 

계곡이 아닌 산정상에 길을 만들었을까


 

피할 곳이라고는 마주 오는 대형트럭뿐이며 


 

큰 바위나 웅덩이조차 한곳도 없는지라 왠지 불안하다.


 

번쩍하고 한참 후에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리며 뒤에 탄 아내도 놀랬는지


 

힘을 주어 꼭 등을 껴안는다.


 

역시나 우려했던 비는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해지며 10m도 앞이 안 보이도록


 

어두워 지면서 큰 화물트럭은 안개 속을 속도를 내며 달려오는데


 

불빛이 가까이 도착해서야 보이니 아무리 갓길로 바짝 붙여 속도를


 

10~20km로 줄여도 휙 지나칠 때면 온몸이 오싹 떨려 온다

       

 

지금은 한여름이지만 4,000m 이상 되면 햇볕이 들어도 쌀쌀한데 


 

비까지 오면 기온이 뚝 떨어져 영상15도에서 영상3~5도로 내려가고


 

체감온도는 더 내려가 영하로 떨어져 오토바이를 세우고 자켓안에


 

겨울 옷을 더 껴입고 비옷을 입어야 한다.


 

멈추면 고산증세가 더 심해 숨을 크게 몰아 쉬며 헐떡이게 되고


 

산소부족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며 기운도 쏙 빠져 ,하의가 붙어 있는


 

원피스비옷을 혼자서는 도저히 입기가 너무 힘들어 서로 입혀 줘야 한다


 

평소 270km 거리라면 3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무려 8시간만에


 

뿌교에 도착하여 한국수녀님을 만났는데 6시 저녁미사가 30분 남았다고


 

빨리 옷 갈아 입고 서둘러 준비하라신다.


 

전보근신부님 말씀엔 뿌교 가는 길은 큰 산 4개만 넘으면 낮아지니


 

금방 갈 거라고 하셔서 믿고 달렸는데 8시간 내내 4,000m 이상


 

고산지대였고 뿌교 역시 2,700m라서 그리 낮은 지역은 아닌데

]

 

아내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다리 힘이 빠져 주저 앉아 버렸고 


 

도착한 이곳은 날씨가 개어 수녀님은 우리가 지나 온 길에서 고생한


 

일을 전혀 모르고 성당에 서둘러 가자고 하셨다.


 

아내는 일어나 주섬 주섬 젖은 옷을 벗어 갈아 입고 평일 저녁미사에 참석하였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수녀님은 농가에서 직접 짜서 생우유를 바케스 통에 들고 와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매우 고소하고 맛이 좋다며 몇 리터를 사셨고


 

즉석에서 구워주는 빵도 몇 개 사셨다.


 

뱃속은 꼬르륵거리는 데 맛이라도 봤으면 좋겠는데


 

수녀님은 몽땅 챙겨서 들고 가시며 


 

수녀원에 가서 함께 저녁식사로 먹자고 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길에 도롯가 원두막에서 파는



애플망고가게를 여럿 봤는데 


 

가파른 비탈길가에 위치해 있어 오토바이 주차가 힘들 것 같아


 

지나다 보면 주차하기 좋은 곳에 또 과일가게가 나오겠지 하고 왔는데


 

 가게가 마지막이었던 지라 사먹고 올걸 중간에 점심 먹은 이후론


 

쫄쫄 굶고 빗속을 뚫고 쉬지 않고 끝까지 오느라 배가 많이 고팠었다


 

한국수녀님은 매일같이 정신지체 장애우 들과 함께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시며 


 

먹이고 입히며 재우며 손발이 대신되어 주는 일을 하고 계셨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오신 수녀님도 계셔서 두 분이 함께 계시며 


 

요즘은 방학기간이라 일부는 부모 만나러 집에 갔고 현재는 집이 멀어


 

가지 못한 10여명을 돌보는데 많을 때는 수십 명을 되어 벅차지만 


 

주님께서 주신 사업이라 조금도 어려움 없이 해 나갈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다음날,


 

나스카까지는 170KM로 가까우니 점심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고


 

작은 마을이라 오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고 수녀님 일도 도와 드리고


 

가기로 하였다.


 

수녀님이 아침식사로 주신 음식 중에 스프가 맛이 있어 물어 보았더니


 

안데스 중에 이곳이 원산지라는 "마카" 가루와 키노아로 끓인 죽이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없는 최고의 건강식품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카는 한국에서는 "안데스의 산삼"으로 불리며 인기가 많아 귀국할 때


 

사가라고 말씀하셨다.


 

작은 동네라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센트로 중앙광장에는


 

어김없이 성당이 위치해 있고 광장 앞 가장 큰 길가에는 양 옆으로


 

노점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혹시 "마카"가 있나 물어 보았더니


 

곡물가게를 가르쳐 주었고 자루에 담아 덜어 팔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일상 먹는 음식이다 보니 흔한 식재료였다.


 

그러나, 내게 몸에서 신호가 왔다


 

아침에 식사를 맛있게 먹은 마카 죽이 설사를 일으킨 것이다.


 

화장실이 급한데 장보다 말고 수녀원으로 줄달음칠 수 밖에...


 

주변에 물어도 자기네 가게는 화장실이 없다니


 

마카의 특성은 한끼에 조금만 먹어야 된다는 것


 

티스푼으로 약간만 음식에 섞어 먹든가 물에 타먹어야지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고 한다.


 

수녀님이 주신 죽의 양이 많았나 보다.


 

다시 시장에 가서 마카 5키로와 끼노아 5키로를 구입했고


 

망고도 한 봉투를 사서 들고 와 수녀님께 드렸다.


 

수녀님은 일년에 한번씩 정부에서 복지시설에 나눠주는 배급품을 타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멀지 않은 곳에 보관창고가 있었고 공무원이 서류에 적힌 배급량을 꼼꼼히


 

확인 후 나눠 주는데   50KG짜리 몇 푸대와엄지손가락 한마디 굵기의


 

완두콩 비슷한 것 두 푸대,북어처럼 말린 야마고기 한푸대,식용유 몇병, 등등


 

여러 가지를 장애복지시설에 보급품을 해마다 한번씩 나눠 준다고 한다.  

 

 

보관 창고에는 쌀이 두 종류로 오래 묵은 누런 쌀과 하얀 쌀이 있었고 


 

공무원은 우리한테 누런 쌀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수녀님께 귓속말로 이왕이면 묵은 쌀 말고 햇 쌀로 달라고 해 보세요?


 

수녀님이 얼른 가서 흰쌀로 주시면 안되냐고 물으니 망설이더니 바꿔가라고 한다


 

무거운 것이 대수인가 얼른 내리고 바꿔 실어 왔다.

 

 

언덕배기에 있는 수녀원 복지시설까지 잠비아 수녀님과 함께 룰루~랄라


 

삼륜차를 빌려 싣고 왔다.


 

 





 

 

"한국수녀님과 불가사의한 나스카 라인"


 

뿌교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나스카를 향해 달려 가는 중에


 

잠시 쉬어가려는 중에 길가 풀밭에 잔뜩 쏟아 부어 놓고 파는


 

선인장 열매를 발견하였다.


 

엊그제 길가에 멈춰 사 먹었어야 했던 애플망고 생각에 얼른 멈추고


 

주인아줌마 옆에 주저 앉았다.

 


말은 안 통했지만 어찌 알았는지 딸인지, 며느리인지 한데 뭐라 시키니


 

집안으로 들어가 접시와 칼을 들고 나와 선인장 열매를 깎아


 

한 접시를 내밀며 먹으라고 준다.


 

웬 횡재야?


 

얼마 치를 달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접시에 담아 내밀 때는 공짜라는 얘기?


 

열댓 개가 담긴 접시를 비우니 또 한 가득 접시에 깎아 담아 준다?


 

이후 두 차례를 더 먹었으니 족히 아내와 둘이서 50~60개는 먹었을 듯싶다.


 

달콤하면서 시큼도 하고 씨도 삼키며 어찌나 맛있던지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주인아줌마는 또 다시, 딸인지 며느리인지 뭐라고 시키니 집안에 들어가  


 

접시에 찐 옥수수와 집에서 직접 만든 짭짜름한 치즈를 한 주먹 담아와


 

더 먹으라고 한다.


 

성의를 봐서 안 먹을 수도 없고 몇 알 떼어 먹는 시늉을 한 다음


 

손짓으로 배를 가르치며 배터진다는 시늉을 하며 웃으며


 

모두 주머니에 챙겼다.


 

조금 있으니 개울에서 고기를 잡던 아들이 왔고 장딴지를 보니 모기에 물려


 

상처 투성이라 오토바이에 실린 버물리모기약을 들고 와 발라주며 반밖에


 

안 남았지만 너 가지라고 주었다.


 

열매를 배터지게 얻어 먹었는데 버물리모기약 쯤이야..


 

바르는 시늉만 내더니 주머니에 얼른 챙기는 것으로 봐선


 

어린 자식한테 발라 주려나 싶다


 

이왕 실컷 얻어 먹었는데 조금이라도 팔아줘야 도리지 싶어 


 

페루 돈으로 5페소를(1,700내밀며 한국수녀님 사진을 보여 주며 


 

나스카로 만나러 가는데 가져다 드리게 담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손잡이가 달린 등나무바구니에 한 가득 담아 허브잎사귀를 꺾어 덮어 주었는데 


 

족히 한 접(100) 넘어 보였다. 바구니 채로 가져 가란다.


 

이것을 오토바이에 어떻게 매달고 가나 고민하다가 검은 비닐을 꺼내어


 

옮겨 담으니 반밖에 안 들어 갔지만 할 수 없이 쉽게 가져가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시골 인심이라기보단 페루 원주민들의 진심이 담긴 착한 마음씨라고 해야 맞겠지?


 

나스카에 도착하여 한국수녀님으로부터 후한 환대를 받으며


 

그 동안 지냈던 자랑거리를 늘어 놓았다.


 

가톨릭 성주간인 부활  일주일 전부터는 모든 성당들이 분주해 진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로 주일 아침 일찍 모든 신자들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동묘지에 모여 신부님을 당나귀에 태우고 성지가지 나뭇잎을 흔들며


 

찬송가를 부르고 성당까지 가는 행사를 하였다.  


 

다음날 대부분이 경비행기를 타고 나스카 라인을 둘러 보는 게


 

좋다고 하는데 절약하느라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가서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살펴 보는 게 차분히 더 잘 보였다.


 

다녀온 사람 말에 의하면 경비행기가 창가에 앉은 양 옆을 보여 주려고


 

좌우로 너무 흔들어대어 멀미를 심하게 하느라 별로 보지도 못하고


 

내렸다고 하던데 멀미해도 좋으니 아내는 경비행기를 탔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모른척하였다

 


불가사의한 것은 맞지만 그다지 볼 것이 없었고 


 

차라리 독일처녀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스카 연구만을 했다는


 

박물관을 봐야만이 평생 연구한 이유가 이해가 갔다


 

그러나, 누가, , 그렸는지 의문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메모장 옮김"

 

나스카에는 어린이 유치원과 방과 후 숙제를 도와주는 놀이방을 운영하시는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의 최 카타리나 원장수녀님과 한국수녀님이


 

한 분 더 계신다.


 

어제 하룻밤 자고 온 뿌교도 최 카타리나수녀님이 설립하셨다고 한다.

 

 

성주간 성지주일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고 8시 미사전인 7시반에


 

모든 신자들이 성당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 앞에서 모여


 

성지가지를 흔들며 본당신부님을 당나귀에 태우고 성당까지 오는


 

옛날부터 전통 그대로 예수님이 당나귀 타고 마을에 들어 오시는


 

모습을 재현한다고 한다


 

오후에는 


 

나스카 라인을 구경하기 위해 사막으로 가보았는데


 

원래는 경비행기를 타고 지상을 내려다 봐야 잘 보인다는데


 

아내는 지금까지 엄청 고산병에 시달려 오다 보니 경비행기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양 옆을 보여 주기 위해 날개 짓을 심하게 하여 


 

대부분 멀미를 심하게 한다고 수녀님께서도 극구 말리셨다

 

 

최 카타리나 수녀님은 리마에 며칠 가셨다가 오후 늦게 오셔서 처음 뵈었는데


 

스타렉스보다 더 커 보이는 승합차를 몰고 장을 봐가지고 돌아 오셨고


 

통화 목소리가 카랑카랑 하셔서 젊은 수녀님인줄 알았는데 환갑은 훨씬 지난


 

할머니수녀님으로 얼마나 활기가 넘치는지 40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이셨다.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선교생활에 하셔서 인지 매사에 능통, 달관이 되셨다.


 

월요일에 리마로 가는 길은 아내를 편하게 보내기 위해 고속버스를 선택해서 


 

미리 티켓팅을 해두었고 10시반에 출발하여 오후 530반에 리마터미날에서 


 

마중하기로 하여 새벽에 출발한 나는 리마 한인성당에 일찍 여장을 풀었고


 

한 시간을 기다려 만나 한인성당으로 되려 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카를 지나 피스코를 달릴 즈음,


 

도로변 줄지은 과일가게는 전부 애플망고를 팔고 있었으며


 

쉬어 갈 겸 가게에 들어가 망고를 주문하는데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세상에 나 ??


 

간난애기 머리통 만한 애플망고 한 개가 운솔(1=350),


 

싸다!, 싸다!, 


 

이렇게 싼 망고를 원 없이 먹겠다고 싱코(5) 주세요!


 

3개 먹고 배가 터지는 줄 알았고 트림하면 망고 냄새가 역겹도록 심해 


 

점심 대용으로 밥보다 좋아하는 과일을 참으로 원 없이 먹었다.


 

이후에도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실컷 망고를 사 먹어야지....  





 

 

 

리마 외곾


 

외떨어진 마을에서 선교하고 계신 순교복자수녀님들을 만나 뵈었다.


 

삼각지성당에는 수녀님이 모두 순교복자수녀회에서 오시기 때문에 


 

처음 뵙는 수녀님들이지만 늘상 뵙던 수녀님처럼 왠지 마음이 편하고 


 

이곳 수녀원 역시청파동 본원이 삼각지성당에서 가까운 것처럼  


 

자주 들렸던 곳처럼 스스럼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전에 00바겟트에서 제공하는 전일 남은 빵을 받아 이웃들에게


 

나눔을 할 수 있게 청파동 수녀원 본원으로 한동안 심부름을 한적이 있었다.  


 

더우기


 

 엘리사벳 원장수녀님은 키도 크시고 얼마나 활달하신지 완전 여장부셨다.


 

예전에 우리본당에 계셨던 송 젬마수녀님과 절친이라는 같은 연배의


 

연세 지긋하시고 풍체도 송 젬마수녀님과 비슷한 김 마리아수녀님도 계셨는데 


 

다시 송 젬마수녀님을 뵙는 것 같아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우리부부는 뵙기 전에 원장수녀님과 전화통화를 먼저 하였는데


 

손님방이 따로 없어 자고 갈수가 없다고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오후 5시반 무렵에 방문하여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성목요일 저녁미사를 7시에 드리고 


 

이후부터는 꽃가마를 메고 마을을 돌아 본당까지 가는 행사를 구경하라고 하셨다.


 

수녀님들은 어린이유치원을 운영하고 계셨으며


 

오늘은 애처로운 모습의 성모님 상을 태운 꽃가마를 꾸미느라 바쁘셨다.


 

원장수녀님은 연세가 육십 대 후반은 되셨을 텐데 성모님을 모신 


 

육중한 가마를 선두에 서서 어깨에 번쩍 메시고 메가폰을 들고 


 

성가를 선창하시는 모습이 장엄하다 못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메고 가시는 모습 그대로였다.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공소에서 출발하여 아랫마을을 내려가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되어 갈 즈음


 

아랫마을 공소에서 출발한 십자가를 메고 계신 예수님의 꽃가마와 만나는 

 

 

장면은 정말 눈물겨운 장면의 연출이었다.


 

앞장서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성모님의 참담함을 어찌 다 헤아릴까 만은,,,,


 

서글픈 곡을 연주하는 동네 관현악의 연주에 맞춰 뒤따른 신자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지고...


 

12시에 본당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고 수녀님과 함께 공소로 


 

돌아오는 길은 세발택시를 타고 돌아 왔다


 

자정이 훌쩍 넘어 끝나면서 우리는 리마 한인성당으로 돌아 왔고,

 

 

 

 



 

 

 

리마 센트로에 있는 대통령궁에서 20여분만 차로 이동하면 산동네가 나오고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달동네 산비탈 층층 계단식 벌집처럼 붙어있는


 

집들 한가운데 국제선교회소속 한국신부님 두 분이 계신 성당이 있다.


 

처음 이곳으로 부임 오시기전인 18개월전에는 성당은 있으나 신부님이


 

안 계신 빈 성당으로 외국 수녀님들 몇분이 계셨었고 성당 뒤


 

사제관 3층건물 계단이 어찌나 경사가 가파른지


 

오죽했으면 수녀님들이 무릎 관절이 아파 포기하시고


 

아랫동네로 이사를 다 가셨을까?   


 

이인주 세례자요한 신부님과 여인혁 사도금구신부님은


 

이곳에 오셔서 신축하다시피 성당을 새로 단장하셨고 


 

그 동안 냉담하고 있을 수많은 신자들을 다시 성당 안으로 모시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우려 쓸까?.


 

그 동안 남미 여러 나라에서 본 현상으로 사제가 부족하여


 

주일날 문이 닫힌 성당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지금 이곳 신자들은 정말 뜻밖의 행운일 것이다.


 

비록 외국신부라서 의사전달에는 아직 서툴러 힘드시겠지만 


 

밤낮없이 열심히 선교하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축복인지


 

현지인들은 아마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신자들도 많아 일요일 오전 8 교중 미사는 성당에


 

의자가 모자라 서있을 정도로 꽉 차며 10시에 주일학교 미사도

'

 

학생수를 어림잡아 세보니 100여명이 넘어 주일학교 교사들 도움 없이는 


 

신부님 두 분이 감당하기엔 매우 역부족일 것 같았다.


 

장래에는 어린이 유아방까지 만들어 아이들을 성당에서 돌보면 


 

젊은 부부들이 일자리를 얻고 생활에 많은 보탬을 줄 수 있을 것 이라며


 

커다란 주님의 사업을 꿈꾸고 계셨다.


 

참으로 대단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계셨다.


 

우리 부부는 성금요일과 부활성야, 부활절까지 신부님 곁에 함께 있어서


 

엄청난 축복과 함께 주님 부활을 맞이 하게 되었다.


 

여신부님은 부활성야 사진을 부탁하셨는데,


 

아뿔사,


 

어젯밤 성금요일 미사는 뒤에서 어림잡아 세어보니


 

그래도 140여명이 자리를 채웠는데


 

부활성야 미사시간이 7시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성당대문은 닫혀있고


 

신자가 들어와 앉지를 않아 이거 큰일났다?


 

성삼일 연휴라서 연일 술에 취해 못나오나?


 

오늘 부활성야 대축일인데 설마 이렇게 신자가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저녁 7시가 넘어 30분이 다되어가는데 신자 한 사람 없이 우리끼리


 

미사를 드려야 되나?


 

별 걱정을 다하게 되었다.


 

잠시 후,


 

신부님은 복사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시길래 나도 따라 나갔더니


 

왠걸


 

수많은 신자들이 성당아래 저만치에서 화톳불을 피우고 둘러 서서


 

성가를 부르며 대기하고 있다가 어둠 속에서 촛불예식을 거행하고


 

성당 안으로 함께 입장을 하셨다.


 

어두컴컴한 밤에 멀리서 보아 여러 명의 복사단은 하도 키도 작고


 

여학생들로 구성하셨구나 했는데 나중에 신부님과 단체 사진을 찍어


 

줄려고 모이라고 해놓고 자세히 보니 모두 할머니로 구성된 키 작은


 

복사단이었다.ㅎㅎㅎ


 

복사뿐만 아니라,


 

해설자, 독서자, 예물봉헌,  전례단 대부분이 할머니로 구성된 


 

우리 신부님인기가 짱 이었다.


 

십자가 고상을 들고 제대 계단으로 올라 입장하던 안경 쓴 키가


 

작은 복사할머니는 그만


 

복사 치마 단을 밟아 제대 위에서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 몇 발짝을 뛰다 


 

신부님이 붙잡아 주셨는지 겨우 자세를 잡아 큰 사고를 모면하였다.


 

다음날


 

부활대축일 미사 해설자는 독서대 높이와 키가 비슷한 


 

어제 큰 사고를 칠 뻔 하였던 안경 쓴 작은 할머니였다.





 

 

 

 

 

페루 리마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을 만났다.


 

은인을 만났던 이야기는 기록을 해둬야 나중에 세월이 흘러도


 

기억을 잃어 버리지 않을 것이고후에 자손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세상엔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갖고 사는 분들도 있구나


 

남을 돕고 살길 바라는 마음에 상세히 적어 본다

 

페루 리마에서 오토바이를 선적하기 전에 많은 갈등을 하며

 

고산병에 매우 힘들어 하는 아내를 먼저 한국에 보내고 

 

혼자 최종 목적지인 멕시코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고민 끝에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 구간인

 

파나마 다리엔 Darien 정글부터 도로가 끊긴 탓도 있지만

 

오토바이를 컨테이너에 싣고 수출입절차를 거쳐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로 가야 하는 복잡한 일을 또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큰 문제되고 시간도 많이 걸릴 수 있어 고민이 되었다.

 

오토바이 라이더가 5명 이상이 모여 20피트 컨테이너를 채운 다음 

 

이동해야 비용절감이 되기 때문에 모두 모일 때 까지 세월 없이 

 

기다려야 하고 몸은 따로 비행기를 타고 파나마공항으로 가서 

 

항구로 이동해 찾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미 6개월 가까이 달려 오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오토바이로 멕시코까지 가기를 포기하고 

 

모두 생략하고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보내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리마에서 선적이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기 위해

 

로지스틱을 찾으려고 며칠째 묵고 있는 

 

리마 한인성당 장상호신부님께 여쭤보니 페루인  

 

"오른손(Orinson, 70)"씨를 소개해 주셨고 

 

만났으나 대화가 안돼 답답했는지

 

그분은 한국인을 찾아 통역을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통역하기 위해 만난 분이 박종래 사장님이다

 

박사장님은 금년 50세로 리마로 오신지 20년 가까이 되어

 

스페인어가 유창하였고 하는 사업은 한국에서 

 

모든 상품을 수입하여 페루 등 남미 전 지역에 판매를 하는데  

 

수많은 중고차 중에 대우차 티코와 다마스는 대부분을 박사장님이

 

수입 판매한 차로 티코택시와 다마스마을버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친절한 오른손씨 덕분도 있지만 통관업무에 해박한 박사장님의

 

도움이 더욱 컸다.

 

우선 우드박스를 짜서 오토바이를 넣어야 되고 

 

일반 목재가 아닌 열처리 방역된 나무를 

 

사용해서 박스를 짜야 되는데 목공소가 협소해서

 

한인성당 마당에서 재단된 나무를 가져와 

 

작업을 한다기에 그건 절대로 안될 일이니

 

다른 장소를 찾아 보라고 했더니 통역하던 박사장님이 

 

그럼 우리 회사 창고에 공간이 있으니 그리로 가져와 작업하라고 하였다.

 

오늘 처음 만나 서로 인사한 것 밖에 없고 통역까지 해주셨는데 자리까지

 

내어 주시다니,리마에는 한국인이 수백명이 상주하고 있고

 

아무리 타향에서 만나 반갑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선뜻 마음을

 

열기는 쉬웁지 않을 텐데 이분은 모태로부터 물려받은 참으로

 

선한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구나.

 

한인성당과 회사와는 14km로 대중교통은 아예 없고 그렇다고 택시를

 

매번 타고 다닐 수도 없어 

 

선적이 완료될 때 까지 머물러야 할 숙소를 회사 근처로 옮겨야 되겠기에

 

박사장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회사 바로 옆 건물 1층은 박사장님이 동업으로 작은 페루음식점까지

 

운영하고 있어 점심도 얻어 먹었고

 

자가용으로 퇴근하면서 중국식당에 데려가 저녁까지 사주셨고

 

저렴하고 한적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안전한 지역에 호텔을 소개해 주셨다.

 

주말은 호텔서 지낸 후 월요일은 사무실로 나가 선적 상황을

 

박사장님을 통해 확인하였고

 

일주일 후에 출항이 잡혀 그때까진 대기한 후 세관서류심사를 모두

 

마친 후에나 리마를 떠나게 되었다.  

 

박사장님의 지인 소유인 아파트가 당분간 비어 있는 것을 알고는

 

호텔에서 나와 월요일부터 아파트에서 무료 숙식할 수 있도록

 

현관키를 받아 이사까지 시켜 주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 쇼핑하러 간다고 하여 따라 나서

 

삼겹살과 마늘,,참치통조림 등을 구입하길래 참, 이분은 가정적이구나

 

퇴근하며 식재료까지 사 들고 가고....

 

그러나

 

집에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보쌈을 만들어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었다.

 

박사장님은 손수 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돼지고기를 삶아 요리하여

 

고추장에 야채를 싸먹으니 

 

이보다 더한 꿀맛이 어디 있겠는가?

 

60평생을 내 손으로 주방에서 요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호강을 하는구나.. 

 

십여 날을 아파트 생활을 하며 낮에는 박사장님 회사로 출근하여 지인들을

 

함께 만났고 귀국 날이 가까워 기념품을 구입하러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현지인 회사직원을 대동시켜 쓸만한 물건을 고를 수 있게 배려까지 해주었다.

 

박사장님의 친한 친구인 식당 동업인 이며 페루경찰출신의 현지인도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마지막 귀국 전날은 이분이 스페셜로 손수

 

주방에 들어가 셰비체를 만들어 송별식까지 해주었다.

 

마지막 날 멕시코로 이동하는데 공항까지 직원을 일찍 퇴근시켜 차로

 

모셔다 드리고 퇴근하라는 지시를 듣고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출발 30분전에 서울에서 온 울뜨리아 친구의 카톡 문자에 의하면 

 

아직 페루에 있으면 건강식품인 "노니" "사차인치"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보고 염치 불구하고 박사장님께 물었더니 공항 가는 길목에

 

건강식품 판매점이 있으니 들렸다 가라는 지시도 함께 하였다.

 

그 동안 세관서류 작업을 위해 수 차례를 자기 차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대가 없이 많은 수고해 주신 오른손(70)씨도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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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는 많은 한국인이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그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한국분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장담컨데

 

박사장님처럼 헌신적으로 물심양면으로 대가 없이 생면 부지인에게 

 

도움을 주는 분은 그다지 만치 않을 것이다.

 

귀국하여 한 달여 지난  오늘까지 나는 툭하면 카톡으로 박사장님을 괴롭힌다.

 

한 달이 넘도록 선박 소식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요?

 

bl에 연락처가 안보여요

 

파킹리스트와 인보이스는 없어도 될까요?

 

애플망고가 죽도록 먹고 싶어요,

 

페루커피를 리마 재래시장에서 맛을 본 것이 있는데 

 

그 동안 마셔본 것 중에 최고던데 주머니사정으로 

 

원두를 많이 못 사 온 것이 한이 됩니다. 등등,,,

 

 


 

 

 

멕시코 과달루페성지를 가다.


 

페루 리마에서 오후340분에 출발한 코파항공은 파나마시티에 초저녁 무렵 



도착하여  공항 로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1140분에 도착하는 


 

멕시코시티 행을 탑승할 수 있었다.


 

오트립가방 한 개뿐이라 부치지 않고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어 좋았으며 


 

멕시코시티도 해발고도가 2,200m라서 낮은 곳은 아니지만 


 

그 동안 다닌 곳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순교복자수녀원으로 가기 위해 공항버스와 지하철, 전철을 3 갈아 타고 


 

3km는 걸어서 찾아 가야 하는데 분명히 수녀원 가까이 찾아 온 것 같은데 


 

번짓수가 딱 수녀원만 없어 이상하기도 하고 주변에 다니는 


 

사람마다 붙자고 물어봐도 아는 척은 하는데 엉터리였다.


 

그래도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낫겠지 싶어 물어보니 알겠다고 길안내를 하는데 


 

족히 30분을 데리고 다니며 지나는 아주머니께 길을 다시 묻곤 한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안내를 자청해서 끝까지 찾아 줄려고 노력하는게 고마워 


 

할 수없이 따라 다니기는 하는데 중간에 돌아 갈수도 없고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물어 찾으니 나보다는 낫겠지 싶어 가방을 메고 쫒아 다닐 수 밖에..


 

결국 골목을 한참을 돌아 수녀원을 찾아 주었고 


 

한국수녀님이 나오셔서 반기는데 아저씨께


 

수고비를 얼마라도 드리고 싶어 수녀님께 여쭤보니 


 

이 아저씨


 

손사레를 치며 거절하시곤 자기도 가톨릭신자라며 인사를 하곤 돌아선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국복자수녀원,



다녀 본 수녀님 계신 곳 중에 가장 땅이 넓고 건물이 크며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곳은 멕시코에서 순교복자수녀를 양성하는 수련원으로 


 

예비수녀님 몇 분이 공부하고 계셨다.


 

손님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별채가 따로 있으며 


 

식사는 수녀님이 종을 흔들어 손수 삼시세끼를 준비해 주셨다.


 

아침은 묵언으로 식사가 끝날 때 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으며


 

식사를 모두 마친 후에야 서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원장수녀님은 도착한 다음날 한국으로 잠시 들어가시게 되어 


 

다음 어른 수녀님의 안내로 멕시코의 역사 및 관광지 소개를 해주셨고


 

오아하카를 다녀 올 수 있게 찾아볼  명소도 일일이 소개해 주시며


 

멕시코의 특산품인 고산에서 나는 최고급 커피까지 3kg이나 주문해 주셨다.


 

다음은,


 

과달루페성지 소개와 멕시코시티를 돌아 볼수 있는 투어버스를 알려 주셨다


 

나는 관광도 좋치만 과달루페성모님께 간구할 일이 많아


 

다른 관광일정은 모두 비우고 오직 여러 날을 매일 찾아가 


 

성모님께 간청을 드리며 저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멕시코시티는 주로 먹는 음식이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 "타코" 

    

 

고기를 썰어 또르띠 위에 얹어 소스를 뿌려 먹는 맛이 다양하고 


 

터키 케밥과 비슷하나 크기가 작아 두어 입이면 모두 먹는다.


 

배고프면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 먹으면 배부르며


 

가격이 저렴해 한 개에 9페소 (500)밖에 안해 실컷 먹어봐야 


 

,삼천원 안쪽이다


 

기차종점 역에 붙어있는 맛있는 피자집도 발견하여 커다란


 

한 조각에 15페소 (900) 처음만 두 조각까지 먹고 다음부턴


 

한 조각밖에 배불러 못 먹었다.


 

콜라도 한 병에 13페소 (700) 시켜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는


 



맛있게 해결된다.      


 

 

  오아하카에 다녀 오다.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7시간 거리인 오아하카(스페인식발음) 


 

황금성당을 보기 위해 23일로 다녀왔다.


 

전 날밤 1130분에 순교복자수녀원에서 가까운 버스터미날을 출발하여 오아하카에


 

다음날 새벽 630분에 도착하는 심야버스를 이용하였는데 편안한 의자 덕분인지 


 

잠을 충분히 잤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오아하카는 멕시코에서 오래된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역사도시로 


 

침략국인 스페인문화를 가장 적게 받아 들인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탓에 예약한 숙소는 아직 문이 잠겨 있었고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성당을 발견하였고 새벽미사에 가는 신자를 뒤따라 들어가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문 앞에는 아침식사를 파는 행상이 몇 군데 눈에 띄어


 

지켜보니 옥수수로 끓인 죽과 


 

중국에서 많이 먹은 기다란 막대모양의 기름에 튀긴 빵을 흰설탕을 묻혀


 

몇 개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였다.


 

1박을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하면서 하룻밤을 더 연장하고


 

다음날은 일요일만 재래시장이 열린다는 


 

투라쿨루라 (Tlacolula)에 찾아 가기로 하였고,


 

첫날은 오아하카 시내관광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시장을 찾아 가기로 하였다.


 

다행이 숙소를 중심지 센트로에 예약을 하여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고


 

시장 안에 쇠고기를 먹을 만큼 요구하면 직접 숯불에 구워주는 곳이 있다 하여


 

찾아가 보았다.


 

자욱한 고기 굽는 연기에 한두군데가 아닌 수십 곳에서 장사를 하며


 

호객을 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장사하는 곳에 들어가 500그램만 썰어 달라고


 

요구한 다음 번호표를 받아 테이블에 가서 앉으면 구워다 주는데


 

모두 먹고 나서 계산하면 된다.


 

메뉴도 다양해서 내장을 부위별로 썰어 팔고 야채와 음료는 


 

노량진수산시장처럼 별도로 주문하면 


 

다른 장사꾼이 가져다 주며 가장 많이 먹는 것이 대파를 구워


 

함께 먹는데 우리나라 대파와 약간 다른 알이 굵은 양파에


 

가까운 파를 사다 주면 함께 구워주며 맛이 달고 좋아 고기보다 더욱


 

먹게 되었다.  


 

색다른 음식을 구경하기 위해 시장안을 어슬렁거리는데


 

멕시코인 가족 여러 명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다가 나를 발견하더니 오라고 손짓하여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앉으라며 함께 먹자고 


 

음식까지 고르라며 시켜 준다.


 

자기는 미국 LA에서 살며 가족을 만나러 멕시코에 다니러 왔고


 

아들 딸이 미국에 있는데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내 명함을 주며 서울에 오면 연락하라고 주었고 가족사진도 함께 찍어 


 

이메일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순교복자수녀님이 오아하카에 가면 반듯이 들려 보라고 하신 


 

산토 도밍고 황금성당으로 500년전 역사로 스페인이 침략 후


 

황금을 모두 착취해 갈 무렵 


 

이곳의 통치자가 유일하게 황금을 가져가지 않고


 

모두 성당건축에 사용하여 정면 제대 뒤와 옆을

 

 

황금을 녹여 만들어 전등 불빛에 반사된 황금이 눈에 부시도록 번쩍 번쩍하였다.

 

 

오후에 혼배미사를 마치고 성당 앞 마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센트로 중심광장까지 1키로미터는 되는데


 

온 시민이 모두 참가한 것처럼 행진하며 축제를 방불케 하는


 

결혼식 축하열기에 깜짝 놀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제 먹었던 포장마차에 들려 똑같은 요기를 하고  


 

시내버스로 대략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곳에 한국으로 치면 군소재지에서


 

면소재지로 이동하면 되는데 버스정류장을 물으면 여러 사람이 서로


 

제각각 다른 곳을 가르쳐 주는 통에 헤메이다 겨우 800원 내고 


 

툴라쿨루라 가는 시내버스를 겨우 탈수 있었다.


 

전통시장은 일요일만 서기 때문에 마을 한곳을 사방 도로를 모두 통제하였고


 

장돌배기도 있겠지만 주로 멕시칸 인디오 원주민들이 집에서 기른 동,식물을


 

직접 들고 나와 팔고 있었으며 먹거리도 다양하여 집에서 평소에


 

먹던 인디오 음식을 그대로 만들어 팔기 


 

때문에 싼값에 길거리에 앉아 한끼를 때우고 가는 원주민도 많았다


 

우리의 술지검지를 거르지 않은 막걸리와 비슷한 모양의 걸쭉한 음료라서


 

알콜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알콜 이란다.


 

한 그릇 주문하니 플라스틱 사발에 가득 담아주며 맛은 식혜와


 

비슷한 달착지근한 맛에 옥수수가루를 반죽하여 발효시키지 않고


 

즉석에서 물을 부어 먹으니 무알콜일 수 밖에.


 

과일은 엄청나게 싸 특히, 망고는 종류도 다양하고 저렴하여 처음 온


 

나 같은 외국인은 눈이 휘둥그레 진다.


 

나도 몇 날 몇 칠을 애플망고만 먹었더니 입에서 트림하면 단내가 난다.

 

 

이곳의 특산품은 무명실에 염색한 전통문양의 천이 많이 보이며 


 

직물박물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우리 돈 천원 주고 산 목에 둘러 사용할 만한 크기의 수건을 그만 숙소에 덮고


 

잔 이불문양 색깔이 똑같아 위에 올려 놓고 뒷정리하며 나올 때


 

둘러 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두고 나오고 말았다


 

하루 종일 목에 두르고 땀을 닦아 사용했지만 가장 아쉬움이 남는 물건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