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가톨릭한국선교사를 찾아

마추픽추를 보기도 전에 쓰러지다.

즈카리아 2018. 3. 22. 01:26


마추픽추를 보기도 전에 큰 고비를 넘겼다.


볼리비아에서 한달 이상을 머물고 코차밤바 수녀님댁에서 출발한 우리는

 

마지막 밤을 페루 국경검문소 넘기 직전인 티티카카 호수가 보이는

 

코파카바나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오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굳은 날씨에 라파스가 지척인 엘알토는 고도가

 

4천미터가 넘었고 인구는 왜그리 밀집해 사는지 도로가 인산인해로 차선도 없고

 

역주행이 다반사이며 횡단보도는 아예 없어 아무데서나 건너 다니고

 

질퍽한 진흙탕 길 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안간힘 다써 지나쳐 왔다.

 

자매수녀님 두 분이 엘알토 인근에 계신 것을 알았지만 이메일을 사전에 드렸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찾아 뵙기가 어려워 그냥 지나쳐 티티카카 호수까지

 

가기로 하였다.

 

코파카바나에 예약을 한 탓에 아침부터 12시간을 달려 저녁 무렵에 도착하였고

 

호숫가 포장마차에서 송어구이를 시켜 먹고 잠들었는데 작은 목소리로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아내가

 

나 추워

 

몸을 만져 보니 말로만 듣던 사시나무 떨 듯 한다는 표현 그대로

 

덜덜 떠는데 겁이 덜컥 났다.

 

이 사람 이러다 일 나는 것 아니야?

 

구급약으로 우황청심환 두알과 고산병약, 소화제, 두통약 등을 한꺼번에 먹이고

 

침낭을 내 것까지 둘둘 감고 두 팔로 꼭 끌어 앉고 대략 30분정도 지나니

 

이마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이동네는 비행장는 고사하고 병원도 없어 보이는 외진 마을이라 


아파 누우면 큰일이다 싶었다.


다행이 차츰 이마에 열은 오르고 몸이 따뜻해지며 누워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바로 리마에서 한국으로 들어 가는 티켓을 알아 보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5개월을 걸려 왔는데 쿠스코 마추픽추는 꼭 보고 가야지


고산병 무서워 안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한 순간에 고산증세가 올지 몰라 좀 더 신경 써서 약을 꼭 챙겨 먹고

 

대비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건강이 조금은 회복된듯하여 다시 출발을 하였다.

 

호텔을 출발한지 불과 10여분만에 볼리비아 국경초소인지 경찰은 길을 막고

 

오토바이를 멈추라고 손짓을 하였다.

 

멈춘 위치가 약간 오르막 이었고 아내는 뒤에 올라 타 있는 상태에 그만

 

경찰관이 지켜 보고 있는 바로 앞에서 다리에 힘이 빠져 중심을 잃고

 

그대로 옆으로 꽈당 하고 나뒹굴고 말았다.

 

인근에서 지켜 보던 경찰들까지 놀래 달려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찰관은 아파하는 아내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 발을 주물러 주기까지 하였다.  

 

원래 친절한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검문조사는 뒷전이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한지 여행담 듣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동안 내가 편견이 심했나 보다.

 

길에서 볼리비아 경찰을 만나면 비상금을 항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친절을 베풀고 편안하게 검문소 안내까지 받게 될 줄이야.

 

볼리비아와 페루 두 나라가 한 건물 안에서 나란히 통관업무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은 또 처음 보았다.

 

양국이 우애가 깊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 데..




그동안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 사진찍을 정황이 없었고 


다행이 쿠스코부터는 컨디션이 좋아져 마츄피츄 사진을 찍을수가 있었다.


아래 사진은  모두 쿠스코와 마츄피츄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