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리마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을 만났다.
은인을 만났던 이야기는 기록을 해둬야 나중에 세월이 흘러도
기억을 잃어 버리지 않을 것이고후에 자손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세상엔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갖고 사는 분들도 있구나,
남을 돕고 살길 바라는 마음에 상세히 적어 본다.
페루 리마에서 오토바이를 선적하기 전에 많은 갈등을 하며
고산병에 매우 힘들어 하는 아내를 먼저 한국에 보내고
혼자 최종 목적지인 멕시코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고민 끝에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 구간인
파나마 다리엔 Darien 정글부터 도로가 끊긴 탓도 있지만
오토바이를 컨테이너에 싣고 수출입절차를 거쳐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로 가야 하는 복잡한 일을 또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큰 문제되고 시간도 많이 걸릴 수 있어 고민이 되었다.
오토바이 라이더가 5명 이상이 모여 20피트 컨테이너를 채운 다음
이동해야 비용절감이 되기 때문에 모두 모일 때 까지 세월 없이
기다려야 하고 몸은 따로 비행기를 타고 파나마공항으로 가서
항구로 이동해 찾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미 6개월 가까이 달려 오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오토바이로 멕시코까지 가기를 포기하고
모두 생략하고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보내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리마에서 선적이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기 위해
로지스틱을 찾으려고 며칠째 묵고 있는
리마 한인성당 장상호신부님께 여쭤보니 페루인
"오른손(Orinson, 70세)"씨를 소개해 주셨고
만났으나 대화가 안돼 답답했는지
그분은 한국인을 찾아 통역을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통역하기 위해 만난 분이 박종래 사장님이다.
박사장님은 금년 50세로 리마로 오신지 20년 가까이 되어
스페인어가 유창하였고 하는 사업은 한국에서
모든 상품을 수입하여 페루 등 남미 전 지역에 판매를 하는데
수많은 중고차 중에 대우차 티코와 다마스는 대부분을 박사장님이
수입 판매한 차로 티코택시와 다마스마을버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친절한 오른손씨 덕분도 있지만 통관업무에 해박한 박사장님의
도움이 더욱 컸다.
우선 우드박스를 짜서 오토바이를 넣어야 되고
일반 목재가 아닌 열처리 방역된 나무를
사용해서 박스를 짜야 되는데 목공소가 협소해서
한인성당 마당에서 재단된 나무를 가져와
작업을 한다기에 그건 절대로 안될 일이니
다른 장소를 찾아 보라고 했더니 통역하던 박사장님이
그럼 우리 회사 창고에 공간이 있으니 그리로 가져와 작업하라고 하였다.
오늘 처음 만나 서로 인사한 것 밖에 없고 통역까지 해주셨는데 자리까지
내어 주시다니,리마에는 한국인이 수백명이 상주하고 있고
아무리 타향에서 만나 반갑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선뜻 마음을
열기는 쉬웁지 않을 텐데 이분은 모태로부터 물려받은 참으로
선한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구나.
한인성당과 회사와는 14km로 대중교통은 아예 없고 그렇다고 택시를
매번 타고 다닐 수도 없어
선적이 완료될 때 까지 머물러야 할 숙소를 회사 근처로 옮겨야 되겠기에
박사장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회사 바로 옆 건물 1층은 박사장님이 동업으로 작은 페루음식점까지
운영하고 있어 점심도 얻어 먹었고
자가용으로 퇴근하면서 중국식당에 데려가 저녁까지 사주셨고
저렴하고 한적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안전한 지역에 호텔을 소개해 주셨다.
주말은 호텔서 지낸 후 월요일은 사무실로 나가 선적 상황을
박사장님을 통해 확인하였고
일주일 후에 출항이 잡혀 그때까진 대기한 후 세관서류심사를 모두
마친 후에나 리마를 떠나게 되었다.
박사장님의 지인 소유인 아파트가 당분간 비어 있는 것을 알고는
호텔에서 나와 월요일부터 아파트에서 무료 숙식할 수 있도록
현관키를 받아 이사까지 시켜 주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 쇼핑하러 간다고 하여 따라 나서
삼겹살과 마늘,파,참치통조림 등을 구입하길래 참, 이분은 가정적이구나
퇴근하며 식재료까지 사 들고 가고....
그러나,
집에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보쌈을 만들어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었다.
박사장님은 손수 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돼지고기를 삶아 요리하여
고추장에 야채를 싸먹으니
이보다 더한 꿀맛이 어디 있겠는가?
60평생을 내 손으로 주방에서 요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호강을 하는구나..
십여 날을 아파트 생활을 하며 낮에는 박사장님 회사로 출근하여 지인들을
함께 만났고 귀국 날이 가까워 기념품을 구입하러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현지인 회사직원을 대동시켜 쓸만한 물건을 고를 수 있게 배려까지 해주었다.
박사장님의 친한 친구인 식당 동업인 이며 페루경찰출신의 현지인도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마지막 귀국 전날은 이분이 스페셜로 손수
주방에 들어가 셰비체를 만들어 송별식까지 해주었다.
마지막 날 멕시코로 이동하는데 공항까지 직원을 일찍 퇴근시켜 차로
모셔다 드리고 퇴근하라는 지시를 듣고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출발 30분전에 서울에서 온 울뜨리아 친구의 카톡 문자에 의하면
아직 페루에 있으면 건강식품인 "노니"와 "사차인치"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보고 염치 불구하고 박사장님께 물었더니 공항 가는 길목에
건강식품 판매점이 있으니 들렸다 가라는 지시도 함께 하였다.
그 동안 세관서류 작업을 위해 수 차례를 자기 차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대가 없이 많은 수고해 주신 오른손(70세)씨도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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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는 많은 한국인이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그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한국분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장담컨데,
박사장님처럼 헌신적으로 물심양면으로 대가 없이 생면 부지인에게
도움을 주는 분은 그다지 만치 않을 것이다.
귀국하여 한 달여 지난 오늘까지 나는 툭하면 카톡으로 박사장님을 괴롭힌다.
* 한 달이 넘도록 선박 소식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요?
* bl에 연락처가 안보여요,
* 파킹리스트와 인보이스는 없어도 될까요?
* 애플망고가 죽도록 먹고 싶어요,
* 페루커피를 리마 재래시장에서 맛을 본 것이 있는데
그 동안 마셔본 것 중에 최고던데 주머니사정으로
원두를 많이 못 사 온 것이 한이 됩니다. 등등,,,
가운데가 오른손(70세)씨와 오른쪽 박종래사장님
왼쪽은 페루경찰출신 박사장님친구이며 동업인, 오른쪽은 박종래사장님
박사장님이 인쇄해서 붙혀 주심
열처리 했다는 우두박스 증명서
오른손씨가 일하는 로지스틱 사무실
오른손씨가 그동안 수고한 댓가가 150달러인데 우드박스가격이 비싸게 들었다고 거기다
스스로 또 깎아줘 나는 더 드렸으면 좋겠는데 주머니 사정이 좋치를 않아 마음이 아프다.
박사장님의 동업친구인 페루경찰출신의 딸
모두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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